"이젠 위기인 때와 위기가 아닌 때의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시 위기시대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한 대기업CEO의 말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가장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이지만,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호ㆍ불황에 관계없이 기회만 나면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들의 위기감이 단순한 겸손이나 엄살은 아니다. 우선 경제환경 자체가 바뀌었다. 2008년 리먼사태에 이은 현 유럽재정위기는 부채위주의 성장 패러다임에 종말을 고한 것으로, 세계 경제는 장기간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한국만의 '급성위기'였다면,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만성위기'에 빠져들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수출환경과 내수여건은 점점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는 형편. 아무리 '위기극복의 DNA'를 확보했다 해도, 지금 같은 고성장을 계속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른 경제가 돼 버렸다"며 "대내외 악재로 저성장 기조가 몇 년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하나 도전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스마트폰 시대 도래 이후 얼마나 많은 글로벌 IT기업들이 무너졌나. 그때 대응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삼성도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10년 만에 세계 10위에서 5위로 비약적 도약을 거뒀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밀려날 수도 있는 게 지금의 자동차시장"이라고 말했다.
최근 거세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요구도 기업들에겐 극복해야 할 과제다. 환란 15년을 거치면서 재무구조, 사업구조의 개혁은 성공했지만, 지배구조와 시장구조의 변화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 정부로부터 강제개혁의 메스가 가해지기 전에 좀 더 투명하고, 좀 더 수평적이고, 좀 더 공정한 방향으로 지배ㆍ시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다만 대내외 경제환경 악화를 감안할 때 '경제민주화'와 '경제살리기'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게 경제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요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는 방향이 되어선 곤란하다"면서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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