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다양한 이해집단의 표심을 얻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쏟아낸 대선 공약의 후유증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마련 등 상충된 공약이 많을 뿐더러, 특정 집단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공약도 대거 제시되는 바람에 오히려 계층간 갈등을 부추기고 막대한 재정만 축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후유증이 우려되는 대선 공약 1호는 택시업계 지원 약속이다. 27, 28일께 국토해양부가 내놓을 '택시특별법' 은 압력 집단의 요구에 정치권이 굴복해 국민 전체에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라'는 요구가 버스업계의 반발 등 상당한 역풍을 가져올 게 분명한데도 덜컥 법 개정을 추진키로 야권과 합의했다. 결국 국토해양부는 법 개정을 피하기 위해 ▦수백억원대 규모의 복지기금 조성 ▦택시기사 임금 인상 ▦부탄(LPG) 가격 안정화 ▦감차(減車ㆍ차량 대수 줄이기) 보상 ▦택시요금 인상 등 그간 택시업계가 제기한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부가 정확한 소요 예산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혈세에서 조달되는 지원 규모는 연간 수천 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해결 공약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우려가 크다. 가계부채 대책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 다중채무자의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하고 금융회사가 보유한 연체 채권을 매입해 최대 70%(기초생활수급자)까지 채무를 탕감해주는 게 핵심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성실하게 돈을 갚아 온 우량 채무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에서 이 방안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18조원의 기금 마련도 쉽지 않은 문제다. 신용회복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정리기금 등에서 1조8,000억원 종잣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18조원을 조성한다는 게 새누리당 설명이지만, 종잣돈이 부족해지면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등 주거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도 불완전하다. 박 당선인은 렌트푸어를 위해 집 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주택담보대출로 조달하고 대출금 이자를 세입자가 내는 방식을 제시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수석연구위원은 "국가가 세입자에 대해 보증을 서는 등 주택 소유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함께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우스푸어 대책으로는 집 주인이 주택 일부 지분을 공공기관에 팔고 그 대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를 공약 했으나, 한국인들의 주택 소유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감안하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5년간 철도부지 위에 20만 가구를 지어 주변 시세의 33~50% 가격으로 월세 임대하겠다는 '행복주택 프로젝트'도 보완이 필요하다. 철도 부지는 소음과 진동이 심해 선호도가 떨어지고, 이 사업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00조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정부의 추가 지원 없이는 사업 여력이 부족하다.
세율 인상이 배제된 세수 증대 방안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박 당선인은 5년간 필요한 48조4,000억원의 복지재원을 별도의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고소득자 세제혜택 제한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상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주식양도차익 과세 강화 등으로 충당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거둘 수 있는 세수는 총 소요 재원의 5% 안팎인 연간 6,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현진권 사회통합센터장은 "대선 과정의 공약은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역할로도 충분하다"며 "실현 가능성과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차원의 공약 이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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