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 "국민 세금을 거둘 것부터 생각하지 말라"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주문한 것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증세 불가피론에 거듭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자꾸 증세 얘기만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줄줄 새는 탈루,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을 먼저 기울이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날 발언도 새 정부의 선결 과제 중 하나가 예산 절감 및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ㆍ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에 있음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런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라인도 증세보다는 비과세ㆍ감면에 우선 순위를 두는 인사들로 발탁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아직 재원이 얼마나 투입될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기웃거리는 것은 곤란하다"며 "체납 세금을 징수하고 정부 세출을 줄이는 것을 통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게 순리"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회의에서 증세론에 제동을 건 또 다른 배경도 거론된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하게 따를 증세 문제가 불거질 경우 새 정부가 자리를 잡기 전에 국민들의 반발로 국정 동력을 잃을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증세는 마지막 수단'임을 대선 기간 강조했음에도 최근 박근혜정부에서 복지 공약을 실현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란 주장이 끊이질 않았다. 인수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되던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26일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초청 특강에서 "증세를 하지 않고 정부 돈을 아껴서 (복지 정책을 추진)한다는 발상 자체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으로선 가뜩이나 국정 공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초반에 증세론을 진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에서 증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대선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만 135조원에 달하는데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요격 미사일 구축 등을 위한 안보 비용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최근 국방비 증액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도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 양성화 노력을 하라"는 것이지 증세 가능성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도 "증세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최근 구성된 조세개혁추진위원회나 4월 말로 예정된 국가재원배분회의 등에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국민 설득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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