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제도화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대리인에 의한 환자의 존엄사 판단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가 명시적인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평소의 신념, 가치관 등을 추정해 존엄사 의사를 확인하는 '추정에 의한 의사표시'보다 폭넓게 존엄사를 인정하는 것으로, 앞으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존엄사 제도화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국생위) 특별위원회는 최근 4차 회의를 열고 대리제도의 도입을 인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회의에서는 다수의 위원들이 원칙적으로 대리제도 도입에 찬성했고, 어떤 조건에서 누가 환자를 대리해 존엄사를 결정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됐다.
이윤성 특위 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ㆍ법의학)은 "위원들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어떤 조건에서 대리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심도 깊게 논의했다"며 "(대리제도가) 남용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너무 까다롭게 조건을 달아 쓸모없는 제도가 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대리인에 의한 존엄사 인정은, 환자가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한 경우 '환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제3자가 독립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판단해 존엄사를 결정하는 행위다. 미성년자이거나 무연고자 등 환자의 의사를 물을 수 없거나 가족 등이 추정할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하면 된다. 미국의 일부 주들은 존엄사를 결정해줄 대리인 지정을 허용하고 있으며, 신생아나 영유아의 경우 부모가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의 형태이지만 일본에서도 가족간 합의를 전제로 대리인을 인정하고 있다.
이인영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판단이란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판단"이라며 "회복 가능성이 없고 단지 생명만 연장될 경우 이것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인지 대리인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에서는 대리인을 인정하는 조건에 대해 ▲주치의와, 주치의가 아닌 의사 등 의료인 2명과 환자의 가족 2명이 합의할 때 ▲가족, 의료인, 종교인이나 제3의 공적기관이 동의할 때 ▲환자 가족(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명이 동의할 때 등의 안이 제시됐다. 특위는 다음달 5차 회의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안을 이끌어낸 뒤 이를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국생위의 안을 토대로 이르면 하반기께 법 제정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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