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가 확정 판결 3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3일 김 전 대통령 등 16명에 대한 재심에서 김 전 대통령과 문 목사뿐 아니라 같은 혐의를 받았던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 정일형 전 의원, 이태영 변호사 등 고인들과 함세웅ㆍ문정현 신부 등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심을 청구한 부인이 별세한 고 안병무 교수는 소송 절차 종료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지 못했다.
이희호 여사와 문성근 전 민주당 상임고문,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 등 유족들은 재심 청구인 자격으로 법정에 나와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무죄 선고는 지난 3~4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9호의 위헌·무효성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다.
검찰도 형식적으로 무죄를 구형함에 따라 이번 재심은 첫 공판에서 선고까지 2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피고인과 가족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것"이라며 "당시 시대적 상황이 재심 대상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들의 인권을 위한 헌신과 고통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이 됐다"며 "재심 판결에 깊은 사죄와 존경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달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의미에서 주문을 낭독한 뒤 피고인과 재심청구인이 모두 나갈 때까지 퇴정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 등은 1976년 2월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자유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제도가 말살됐다"는 내용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그 해 3월 명동성당 미사에서 낭독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았다.
문 목사와 김 전 대통령, 윤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 등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유족들과 일부 생존 인사는 2011년 10월 4일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지난 5월 28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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