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에 모처럼 고스톱을 쳤다. 어머니 아내와 함께 셋이서 치다 보니 패가 나쁘다고 죽을 수도 없고(아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되지) 광을 팔 일도 없었다. 점 백인데도 워낙 어리버리, 재주가 메주라서 밑천 3,000원을 금세 다 털렸다(이 3,000원도 다 내가 나줘준 돈이다. 그러니까 판돈은 몽땅 내 돈이다!). 그러고도 저금통에서 계속 동전을 꺼내고 만 원짜리 배추 잎까지 내야 했다.
초장에 한두 번 300~400원 먹고, 잃을 때는 3,200원까지 바가지를 쓰니 당해낼 재간이 있남? 패도 계속 나쁘게 들어와(으레 화투 못치는 사람이 이런 투정을 한다.) 툭하면 또이또이였다. 또이또이는 우리말로 ‘매우 또렷이, 야무지게, 정확하게’라는 뜻의 혀짤배기 말이다. 그러나 화투에서의 또이또이는 같은 패가 두 장씩 떼 지어 들어올 때 쓴다. 어원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자꾸만 잃으니 재미가 한 푼은커녕 반 푼어치도 없어서(돈 잃고 기분 좋은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만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스톱을 쳐보니 앉아 있는 것도, 팔운동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1시간 남짓 했는데도 이런데 예전에는 어떻게 밤늦게까지 화투를 치며 놀았는지 모르겠다. 젊어서 그랬던 걸까.
고스톱을 접은 뒤, 이거야 내가 이기겠지 싶어서 육백을 하자고 아내를 유혹했다. 육백은 600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이기는 2인 놀이이다. 하지만 화투짝 48장 중에서 뭘 뭘 빼고 치는지 기억나지 않고 약이 뭐 뭐 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휴대폰으로 ‘육백’을 검색해(아아, 정말 좋은 세상이구나) 약의 종류와 규칙을 되살려내고 실전에 들어갔는데 이런 젠장, 고스톱보다는 나았지만 돈 잃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원래 중학교 때부터 육백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기린아였고, 육백도 그냥 육백이 아니라 갑오육백에 능숙한 ‘전문가’였다. 갑오육백은 합해서 9가 되게 먹는 고난도 놀이이다. 4는 5로 먹고 9는 10으로 먹고 비는 똥으로 먹는 식이니 얼른 적응하기 어렵고 점수 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후생가외(後生可畏),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마구 밀어낸다고 이제는 서투른 아낙에게 밀려나는 꼴이었다.
몇 판 치다 보니 기억이 되살아나 용코, 이노시카, 대포, 비조리, 빠이를 자연스럽게 외치게 됐다. 300점인 이노시카는 나중에 일본어 전문가에게 문의하니 ‘이노시카초’가 맞는가 본데, 일본말 ‘이노시시(猪) 시카(鹿) 초(堞)’를 줄여서 이노시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어원을 모를 말은 더 있다. 국진(9) 열 끗과 삼광 팔광을 다 먹으면 대포(이것도 300점이다), 국진 열 끗에 삼광 팔광 중 하나를 더하면 빠이(100점)라고 하는데 그 말도 희한했다.
빠이는 이빠이, 그러니까 ‘입파이(一杯)’의 ‘배(杯)’에서 나온 말인가 보다. 그게 아니면 “핸들 입빠이 꺾어!”라고 할 때의 그 입빠이(いっぱい)에서 나온 말일까. 그러면 “입파이 입빠이!”라고 외치면 한 잔 가득 마시라는 말이 되는 걸까. 123, 송동월(송광 똥광 팔광)이라는 약도 있다. 육백의 약 이름에는 이렇게 우리말과 일본 말이 섞여 있는 게 특징이다.
고스톱을 하다가 육백으로 종목을 바꾸니 처음엔 정말 헷갈렸다. 뭘 먹으려다가도 고스톱처럼 뻑을 할까 봐 망설이게 되고, 판을 쓸면 피(껍데기) 한 장씩 받던 걸 생각해 엉뚱한 짓도 하게 됐다. 그러나 육백은 그렇게 짱구 굴리지 말고 패가 나오는 족족 먹어야 한다. 5, 6, 7, 9는 피를 빼고 열 끗과 띠만 가지고 노니 그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육백은 정말 정직하고 순직하고 꾀부릴 필요도 없는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나오면 나온 대로 먹을 뿐 다른 수가 없었다. 굳은자(굳짜)는 가만 놔두어도 내 것이고, 고스톱에서 그토록 중요한 피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껍데기다. 고스톱에 비하면 아무런 술수도 속임수도 없는, 그야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놀이였다.
다만 한 가지 술수가 있다면 비광이 피를 제외한 다른 패를 잡아갈 수 있게 한 점이다. 비광이 바닥에 깔려 있을 경우 다른 패가 비광을 잡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그건 비광이 잡아가는 게 아니라 잡혀가는 거니까)로 예전엔 되게 다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잡아갈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러니 믿고 따라야지. 우리는 그 ‘육백헌법’ 규정대로 놀았다.
고스톱이 유행한 뒤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규칙도 단순한 육백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육백이 둘이서만 하는 것이어서 ‘놀이의 확장성’(이거 참 유식한 말이구나)이 낮은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영악해졌을까? 뻑이나 쇼당(商談) 피박 광박 따닥(동시패션) 판쓸이, 이렇게 놀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없는 육백은 그저 생긴 대로, 패가 들어온 대로 놀아야 할 뿐이다.
내가 육백을 배우고 쳤던 1960년대와, 50년이 넘은 지금 세태의 변화?화투놀이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고스톱에는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장치와 함정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육백에서는 똑같은 패가 석 장 들어오면 재앙인데 고스톱에서는 폭탄이 되어 두 배를 받는 길이 생긴다. 흔들어도 두 배, 쓰리 고도 두 배. 남을 골탕 먹이고 거덜 내는 장치가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육백을 누구에게서 배웠던 것이었던 것일까? 어머니겠지 뭐. 어머니는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육백을 가르쳤을까? 이다음에 커서 육백놀이를 하듯 세상을 순직하게 살라고 그랬던 것이었던 것일까? 편모 슬하에서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내 친구들은 거의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다)는 설날연휴에 화투짝을 만지고 뒤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청마 유치환의 ‘광야에 와서’라는 시에는 ‘내 망나니를 본받아/화툿장을 뒤치고/담배를 눌러 꺼도/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화투를 치면서 이 시도 생각했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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