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영호(38)씨는 얼마 전 동료들에게서 눈병 걸렸냐는 말을 들었다.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는데도 그런 말을 들어 이상한 생각이 든 이씨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눈이 마치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돼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엔 좀 흉해도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길래 처음에는 그냥 넘겼다. 하지만 충혈이 2주 가까이 이어지자 혹시 눈병이 아닐까 하고 안과를 찾았다. 진단은 결막하출혈. 혈관이 터졌다는 얘기다. 의료진은 굳이 따로 치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며칠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씨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씨처럼 눈이 갑자기 빨개지는 사람, 주변에서 어렵잖게 본다. 그럴 때 놀란 마음에 눈을 비비거나 안약을 넣거나 무작정 안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눈이 충혈되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고 그에 따라 대처 방법도 다르다.
흰자위 붉은 면 vs 붉은 선
눈의 흰자위에는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아주 가늘어 맨눈으로 안 보일 뿐이다. 눈의 실핏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터진다(결막하 출혈). 기침이나 구토를 심하게 하거나 코를 세게 풀거나 눈에 힘을 많이 주어도 터질 수 있다. 나이 들어 흰자위를 덮고 있는 막(결막)이 늘어나고 그 아래 조직이 느슨해져 핏줄이 이리저리 당겨지다 툭 터져버리기도 한다.
결막하 출혈은 피부로 치면 멍든 것과 비슷한 상태다. 보기에는 안 좋지만 사실 눈에는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 노창래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그냥 둬도 2~4주 지나면 흘러나온 피가 주변 조직으로 흡수되고 터진 혈관이 복구돼 본래 상태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피부에 든 멍이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일시적이지 않고 핏줄이 자꾸 터진다면 안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핏줄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팽팽하게 부어 올라도 눈이 빨갛게 보인다. 이런 증상이 충혈이다. 노 교수는 "핏줄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면(출혈) 빨간 부분이 대개 옆으로 퍼진 면 모양이 되고 확장된 상태면(충혈) 혈관을 따라 기다란 선 모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울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눈이 빨개진 게 출혈 때문인지 충혈 상태인지 대략 구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충혈은 잠이 부족하거나 과음하거나 피로할 때 잠깐 생긴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저절로 낫는다. 그러나 강승범 대전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정도가 심하고 매일같이 눈이 충혈된다면 가볍게만 생각하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부 자극 vs 내부 염증
눈이 충혈되는 원인은 크게 외부 자극과 내부 염증의 두 가지로 나뉜다. 건조한 날씨나 알레르기 물질, 미생물 등의 영향을 받아 눈이 빨개지는 건 결막(흰자위를 덮고 있는 얇은 막) 충혈이다. 흰자위가 전체적으로 빨개지면서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따갑거나 뻑뻑해지고 시리거나 눈물이 난다. 건성안(안구건조증), 알레르기성과 세균성 결막염 등으로도 발전할 수도 있다. 눈을 세게 비비는 물리적 자극, 비누 같은 화학적 자극도 눈을 일시적으로 충혈시킬 수 있다. 또 자는 동안 눈꺼풀 안쪽의 온도가 약간 올라가면서 눈이 충혈되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 눈을 뜨면 온도가 내려가 증상이 사라진다.
눈 안의 염증 때문에 생기는 섬모체(안압을 조절하기 위해 눈 내부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조직) 충혈은 붉은 부분이 주로 검은자 주변에 몰리는 게 특징이다. 포도막염이나 녹내장, 홍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포도막염과 녹내장 충혈은 결막 충혈과 달리 시력이 떨어질 위험도 있다. 녹내장의 80~90%(개방각)는 충혈 증상이 거의 없지만 나머지 10%(폐쇄각)는 눈 충혈이나 통증, 시력 저하 등을 동반한다.
건조해서 충혈된 눈에는 보통 인공눈물을 쓴다. 알레르기 물질 때문에 눈이 충혈되거나 결막염이 생기면 항히스타민 성분이, 세균이 문제면 항생제 성분이 들어 있는 안약으로 치료한다. 포도막염이나 녹내장과 관련 있는 충혈은 스테로이드제를 쓰고 안압을 조절한다.
비비기, 안대 쓰기 금물
눈이 충혈됐을 때 손으로 살살 비비거나 안대를 쓰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러나 충혈된 눈에 손이 닿으면 자칫 감염될 우려가 있고 안대를 착용하면 눈의 온도가 높아져 세균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처방 없이 아무 안약이나 넣는 사람도 많다. 이주연 한림대성심병원 안과 교수는 "오래된 안약은 세균에 오염됐을 수 있고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는 안약을 남용하면 충혈 상태가 오히려 심해지며 부신피질호르몬 성분이 포함된 안약은 녹내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눈이 자주 충혈되는 사람은 연기나 매연 등의 접촉을 되도록 피하고 햇빛이나 바람이 강한 날에는 선글라스를 쓰는 게 좋다. 1시간 정도 일하면 5~10분은 눈을 쉬고 정확한 검사로 시력을 보정,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화장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構?식물을 키우거나 가습기를 사용해 실내를 건조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도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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