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고급 컨테이너는 수명이 20~25년 달해 친환경 건축 소재로 재조명
철제 잠금쇠 문 그대로 살려 컨테이너의 투박한 매력 드러내
오른쪽 문 열면 거실, 왼쪽은 주방, 문과 집 사이에는 유리 덧문햇볕 쏟아져 들어오게
중앙 대형 책장이 계단 난간 역할
"집은 자산이 아닌 주거공간… 써서 없애는 가전제품과 같아"
지난해 5월 초 전남 목포시의 한 시골마을에 대형 트럭 4대가 들어왔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한 트럭이 부려놓은 것은 컨테이너 3개. 인부들은 컨테이너를 내린 뒤(정확히는 쌓은 뒤) 배선 연결 등의 작업을 마치고 돌아갔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한 주민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공터였던 곳에 하루 아침에 집이 생긴 것이다. 길이 12m, 폭2.4m, 높이 2.9m의 컨테이너 3개를 쌓아 만든 집, 생각나무건축사무소 강주형∙이강수 소장이 설계한 네모하우스다.
'건설'이 아닌 '설치'된 집
컨테이너 한 개 당 면적은 28.8㎡(8.7평)다. 두 개를 붙이면 57.6㎡, 여기에 건축가들이 머리를 짜내 추가한 공간까지 합치면 네모하우스의 건축면적은 85.7㎡(25.9평)다. 4인 가족이 사는 곳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이 집을 '작은집 시리즈'에 포함시킨 이유는 컨테이너가 가진 건축적 가능성 때문이다.
한국 주택 문화에서 컨테이너가 차지하는 위상은 말하기 조심스런 면이 있다. 건설 현장 인부들이 머물 곳이 없을 때, 노숙자를 위한 거처를 마련해야 할 때, 재난을 당한 이들이 임시로 살 곳이 필요할 때 컨테이너는 춥고 열악하고 쓸쓸한 현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오브제다. 차가운 골철판과 칙칙한 회색 페인트는 '안정적 거주'의 느낌과 거리가 멀고 한국에서 집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인 자산가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때문에 컨테이너 집에 대한 인식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사람 살 곳이 못 되는'등으로 굳어져 버렸다.
네모하우스 건축주인 Y씨 부부가 처음 주택을 의뢰했을 때도 컨테이너로 만든 집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평범한 전원주택이었다. 유치원생인 딸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에게 매일 같이"뛰지 말라"고 외치지 않아도 되는 집.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온 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집.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1억원 남짓한 건축비로는 4인 가족이 살 집을 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강주형∙ 이강수 소장은 컨테이너 집을 제안했다.
"컨테이너는 비용적인 면에서 선택의 폭이 매우 넓은 재료예요."
강 소장이 컨테이너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콘크리트는 비용의 하한선이 있지만 컨테이너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있더라도 콘크리트보다 훨씬 낮죠. 단순하게 말하면 콘크리트로 짓는 집의 비용을 최대 10이라고 볼 때 아무리 낮춰도 3까지 밖에 내려갈 수 없다면 컨테이너는 10부터 1까지 가능해요. 컨테이너 집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이유는 지금까지 1, 2에 속하는 컨테이너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말하는 1, 2의 컨테이너는 주로 공사 현장에서 가설 건물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컨테이너 제조사에서 300만~400만원이면 뚝딱 만들어주는 이런 컨테이너들은 수명이 4, 5년 정도다. "주택용으로 쓰는 것과 공사장에서 쓰이는 것은 철판 두께와 열처리 방식에서 차이가 큽니다. 고급 컨테이너는 수명이 20~25년 정도예요. 일반 아파트나 주택의 수명과 크게 다르지 않죠. 더 좋은 건 친환경적이라는 거예요. 땅을 헤집고 짓는 전통적 건축 방식과 달리 다른 곳에서 만들어와 땅 위에 설치만 하면 되기 때문에 대지에 부담이 덜 하죠."
이들이 네모하우스에 사용한 것은 중고 해상운송용 컨테이너다. 해상운송용으로 만든 컨테이너는 거친 바다를 오가면서도 파손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검수과정에서 스펙을 엄격히 따진다. 내구성이 좋아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도 위에 컨테이너를 또 쌓을 수 있기 때문에 2층 주택을 지을 때 특히 좋다.
네모하우스도 두 개의 컨테이너를 놓은 후 그 위에 또 하나를 얹는 식으로 만들었다. 건축가들은 컨테이너 외피의 느낌을 얼마나 노출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컨테이너 특유의 골철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산업 현장의 기계적인 느낌, 거친 풍랑에 시달린 흔적 자체가 멋이 되는 거죠. 갤러리나 카페에 컨테이너를 활용하려는 사람들 중엔 컨테이너의 찌그러진 부분이나 겉에 쓴 화물명까지 그대로 두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Y씨 부부는 컨테이너의 멋에 반해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신중을 기해야 했다. 건축가들은 1층의 컨테이너 2개를 각각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한 뒤 2층 컨테이너는 흰색 바탕에 붉은 테두리를 둘러 완성했다. 낮은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하얗고 빨간 네모 상자들은 마치 레고 블록처럼 이색적이다. 집으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전면에는 길게 자른 나무를 촘촘히 이어 붙여 가정집 특유의 따뜻한 느낌을 살렸다.
그러나 컨테이너 고유의 매력도 포기하지 않았다.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컨테이너에서 가장 탐스러운 부분은 한쪽 끝에 난 문이다. 울룩불룩한 요철에 거대한 철제 잠금쇠가 압도적인 이 문은 해상운송용 컨테이너가 뿜어내는 바다 사나이의 박력, 그 중에서도 정점이다. 건축가들은 이 문의 기능을 그대로 살려 실제로 열고 닫을 수 있게 했다. 1층 오른쪽 컨테이너의 문을 열면 거실이, 왼쪽 컨테이너의 문을 열면 주방이 드러난다. 컨테이너 문과 집 사이에는 유리로 덧문을 설치했다. 이 문을 유독 마음에 들어 한 아내 Y씨는 한겨울에 주방 쪽 컨테이너 문을 활짝 열고 겨울 볕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즐긴다.
푸른 논밭 위 빨간 레고 블록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은 이미 만들어진 구조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간을 마음대로 구성하는 데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 건축에서는 할 수 없는 '묘'를 부릴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가 배치다. 건축가들은 1층의 컨테이너 두 개를 바투 붙이지 않고 2.2m 가량 떨어뜨린 뒤 그 위에 컨테이너를 얹었다. 사이에 생긴 공간은 앞 뒤를 막아 그대로 집 면적에 포함시켰다. 컨테이너 3개를 썼지만 실질적인 크기는 4개에 맞먹는 셈이다.
내부는 모두 튼 뒤 중앙에 나무 계단을 설치하고 바로 옆에 책장을 만들어 붙였다. 대형 책장은 책 수납, 계단의 난간,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책 사이사이로 생성되는 작은 구멍들은 거실과 주방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공간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컨테이너를 쌓는 위치도 조금씩 뒤틀어 재미를 줬다. 2층 컨테이너는 1층에 비해 옆으로 약간 밀어서 쌓았다. 때문에 어딘가로 출항하려는 배처럼 불안한 느낌인데, 레고 블록의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꽤 잘 어울린다. 이는 그대로 기능으로 직결돼 2층의 튀어나온 부분은 1층 현관의 캐노피가 되고 반대쪽 1층의 튀어나온 부분은 내부에서 드레스룸과 다용도실로 활용됐다. 넉넉한 거실과 주방, 안방, 화장실, 두 아이의 독방, 작은 발코니까지 빠짐없이 갖춘 집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1억4,300만원이다.
5월이면 Y씨 부부가 네모하우스에 입주한 지 1년이 된다. 그 동안 마을 주민들과의 친분도 두터워졌다. 집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에 Y씨는 "오신 분들이'집 안은 좋네'라고 하시던데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대부분이 고령인 이곳 주민들에게 컨테이너 주택은 여전히 낯설다.
남편 K씨는 "전원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집이든 상관 없다"고 말했지만 말 중간중간, 처음 컨테이너 집을 제안 받았을 때의 고민을 내비쳤다."한국에서 집을 지으면서 자산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나중에 팔았을 때 처음 들인 건축비를 건질 수 있을 것인가'. 컨테이너 주택은 집을 자산이 아닌 주거공간으로 생각할 때 가능한 집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감가상각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전제품처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고 버리는 개념을 집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풀려 되파는' 것이 아니라 '써서 없애는' 집. 지금 네모하우스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집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방법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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