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도호 작가가 발표한 '집 속의 집'은 천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집이다. 바느질로 지붕, 문고리, 계단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다른 사례를 보자. 평생 같은 소재로 그림을 그린 원로 작가가 있다. 그가 고령으로 손이 떨려 조수들의 손을 빌린다는 것은 이미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두 사례에서 우리가 윤리적 불편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뭘까. 미술의 핵심이 노동에서 아이디어로 바뀐 근현대 이후, 작가들이 작품 제작에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김홍석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그 위를 걸레로 닦도록 했다. 지급한 돈은 미술계 일용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 4시간에 4만원, 하루에 8만원. 작가와 노동자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을 두고 작가는 묻는다. 이 그림은 작가의 것인가, 노동자의 것인가. 붓질과 걸레질의 가치가 다르게 매겨진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게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노동자는 모른다는 것, 혹시 그 차이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예술가의 붓질에 매겨지는 거액과 노동자의 걸레질에 매겨진 8만원 사이의 간극은 불평등일까, 아니면 창조경제의 포석일까.
현대미술의 초점이 지적 재산에 맞춰지면서 회화는 예술가의 노동력과 기술력을 논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이 됐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블루 아워스(Blue Hours)'전에서 작가는 이 최후의 영역을 건드림으로써 '한국 미술의 생산과 유통'이라는 흙탕물을 휘젓는다. 과거 탈북자에게 일당을 주고 인형탈을 쓰게 하고(사실 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법 체류 노동자의 인터뷰 영상을 찍는 식으로(노동자도 가짜였다) 부조리한 상황마다 가짜 카메라를 들이대온 그가 포착한 한국 미술계는 어떤 모습일까.
-걸레질 회화는 남의 손을 빌리는 미술 생산 방식을 풍자하기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작가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건 이미 현대미술의 합의된 사항이다. 그러나 회화는 다르다. 예술가의 붓질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것마저 노동자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그것을 미술로 받아들일 것인가 묻고 싶었다. 미술이 음악, 공연과 다른 점은 제조업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인데 임금계산법은 천지차이다. 정부와 대학은 지적 재산이 돈이 된다고 가르치지만, 돈이 없으면 배움도 불가능한 사회다. 지적 재산을 창출할 수 있는 부류는 한정돼가는데 정부는 창조성을 강조하고 그 순간 제조업은 쓰레기가 된다."
-현대미술이라는 장르 자체를 공격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존중한다. 그러나 서구와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서구는 미술 생산의 기업화를 후기 산업주의 맥락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윤리적 논란이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적 재산을 거래하는 게 여전히 생소한 이들이 있다. 역겨운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구의 시스템만 쏙 빼와 흉내 내는 이들이다. 더 저렴한 노동자, 미래가 불안한 학생들을 헐값에 고용해 작품을 만든 뒤 지식을 무기로 저작권을 갖는 이들. 현대미술이 서구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현대미술을 할 시기가 됐다."
-걸레질 회화에 동원한 노동자들이 '예술을 전혀 이해 못하는 부류'라는 배역을 맡았다는 것을 알면 상처 받지 않을까.
"내가 가장 불만스러운 게 그거다. 2000년 이후 한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화두가 본격화해 계급 문제, 성소수자 문제들이 불거졌다. 이를 제기한 건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이고 나도 그 중 하나다. 불편한 것은 계몽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식의 위계다. 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약자의 아픔을 얘기하는, 그것도 선진 지식에 근거한 그 주장이 역겹다."
-2008년 '창녀 찾기' 퍼포먼스 때는 확실히 문제가 됐었다. 당시 매춘부로 지목된 여성이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작가는 당시 갤러리 입구에 '이곳에 창녀가 초대됐다. 창녀를 찾는 이에게 120만원을 주겠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작가는 후에 섭외된 여성이 실은 배우라고 밝혔다) 사실이 아니다. 그는 내 퍼포먼스에 여러 번 나온 배우다. 하지만 나는 매춘여성의 진위 여부가 왜 중요한지 지금도 모르겠다. 걸레질도 사실 내가 한 건데 노동자들이 했다고 하니까 다 믿지 않나. 그에 대한 폭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갤러리 안에서는 지적인 대화와 사회에 대한 점잖은 고민만 오고 가야 하나. 밖에서는 생명을 위협 당하는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
-잠깐, 걸레질을 직접 했다고? 아까 노동자들이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왜 중요한가. 중요한 건 일용직 노동자가 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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