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가족을 잃어서뿐만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가족을 잃어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점이 너무 많다는 점이 이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옆에서 지켜보는 국민들도 납득이 안 될 정도로 비상식과 비정상으로 점철돼 있다. 침몰 사고 한 달이 됐지만 앞으로 1년, 아니 몇 년이 걸리더라도 사건의 전모와 그 책임소재가 낱낱이 규명될 필요가 있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치른 세월호의 희생은 무의미하고 교훈도 얻지 못할 것이다. 전남 진도와 경기 안산 등에서 만난 희생자 유족들은 한 맺힌 목소리로 이런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1. 대기 방송하고 선원들 탈출한 이유는: 퇴선 문제
희생자 가족들을 포함해 온 국민이 경악한 점은 마치 희생을 키우려 작정한 것처럼 선원들이 승객들을 배 안에 붙잡아 두고 먼저 탈출한 것이다. 가족과 함께 여행에 나섰다 홀로 구조된 조요셉(8)군의 친척은 “무엇보다 선장과 선원들이 왜 제일 먼저 탈출했는지 가장 궁금하다. 그 이유를 꼭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원들이 구조순위에서 밀릴까 봐 승객들을 일부러 나오지 못하게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처음에는 황당하게만 들렸지만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난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해경이 도착하고 세월호의 좌현이 이미 침수된 오전 10시쯤까지 선내에선 7, 8차례에 걸쳐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됐는데 이것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도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생존자들은 승무원들이 조타실에 무전기로 퇴선 여부를 수차례 물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준석(69)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 15명은 승객들을 죽게 두고 가장 먼저 세월호에서 빠져 나간 혐의로 전원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2. 초기 수중구조 왜, 누가 늦췄나: 구조 지연
“잠수사는 기다리고 있는데 배가 안 왔어요. 일단 협의를 해야 한다더군요. 배 하나 오는 것도 다 보고를 해야 된대요. 자기가 결정을 못 한답니다. 그러느라 이틀이 지났어요.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애들을 먼저 구해야지 보고하고 회의하다 이틀이 지난 겁니다. 이건 죽인 거 아닌가요?”(유가족 이모씨)
희생자 가족들이 가장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수중 수색 지연이다. 침몰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의 초동대처도 문제였지만 배가 가라앉은 뒤에도 강 건너 불 보듯 굼뜬 대응으로 실낱 같은 희망을 기대하던 가족들을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일반인 희생자 고 이광진(42)씨 자형 한성식씨는 “정부가 잠수사 120명을 투입했다고 한 지난달 17일 사비로 배를 빌려 구조현장에 다녀온 일부 가족들은 ‘15명도 아니고 딱 2명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조명을 밝히기 위한 채낚이 어선 등 아이디어도 가족들로부터 나왔다. 해군이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6시쯤 가이드라인 설치에 성공했지만 본격적인 선내 진입은 18일부터 이뤄졌다.
정부는 날씨와 조류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렇게까지 수중 수색이 지연된 것이 과연 불가항력적인 이유 때문인지, 정부 재난대응시스템의 근본적 허점 때문인지, 아니면 구조작업을 지휘한 해경의 직무유기인지를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3. 해경, 무엇을 숨기고 있나: 은폐 의혹
유족들 사이에선 해경이 희생자들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 최순복(61)씨 남편 최인수(68)씨는 “유류품 인수할 때 휴대폰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해경에서 ‘검사를 할 테니 협조 해달라’고 했다”며 “이미 가져가 놓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없다’며 돌려 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직원 두 명을 잃은 김윤태씨도 “우리 직원들 지갑은 돌려줬는데 휴대폰은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해경이 사고와 대응과정에 대해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퍼지고 있다. 해경이 세월호와의 교신 녹취록이나 구조과정 촬영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한 점도 이러한 의심을 부추겼다. 실종자 가족들은 또 수색현장을 방문했을 때 해경이 잘 보이지도 않는 1, 2㎞ 거리에서 더 이상 근접하지 못하게 막은 점도 의심하고 있다. 해경이 부실한 구조과정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 숨기는 것이 없는지 여부가 규명돼야 할 점 중 하나다.
4. 실종자 수색 왜 언딘에만 의존했나: 유착 의혹
수색 현장을 지켜본 유족들은 이름만 민관군 합동수색팀일뿐 “그냥 ‘민’만 있었고, 그 민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라고 꼬집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한 친척은 “군은 뒤로 빠져 있고, 지휘권을 가진 해경도 그렇고…. 아예 수중구조 협조체계가 안 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해경과 언딘 사이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보도로 많이 알려졌다. 언딘 위주의 수색에 반발한 민간 잠수사들이 단체로 짐을 싸 팽목항을 떠나기도 했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 위원에게‘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했다’는 답변서를 보냈다 파문이 커지자 “해경 판단이었다”고 정정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만약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다른 민간 잠수사나 구조업체를 동원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해경은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5. 재난대응 공백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냐: 책임자 처벌
검ㆍ경 합동수사본부 수사로 세월호 침몰 원인은 화물운송 수입을 위해 평형수를 빼고 과적을 일삼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운행으로 좁혀졌다. 출항할 수 없는 세월호 운항을 가능하게 한 해운 관련 기관들의 비리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뒷북 수사가 왠지 액션 같다”고 우려했다. 한 유족은 “일단 구조가 중요한 건데 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끄집어내서 다른 쪽으로 보도를 몰아가느냐”고 말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도 “아이들을 수장시킨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경이 출동 직후 선내 진입해 퇴선 안내 방송을 하지도 않고, 승객이 다른 승객들을 끌어올려 탈출을 돕는 장면을 보고도 멀뚱하게 구경만 하는 등 무능력을 노출한 해경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재난구조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공직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원고 학생 아버지는 “우리 애는 갔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 깨끗한 물로 갈아야 한다. 대통령까지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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