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안전이 간과되는 주된 이유가 경제논리다. 기업은 ‘경영효율화’를 명분으로 안전과 직결된 비용부터 줄이고, 업계는 규제 법령을 완화하기 위해 갖은 압력을 행사한다.
안전을 희생해 비용을 절감하는 대표적 사례가 열차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 1~4호선)의 누적 적자는 3조3,319억원, 서울도시철도(5~8호선)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각각 1조1,603억원, 1,932억원에 달한다. 적자해소 압박에 시달리자 서울메트로는 2008~9년에 정비 인력 정원을 201명, 2010년에는 차량 기지 경정비 부문 122명을 감축하고 설비 점검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겼다. 이 때문에 고장이 날 때마다 곧바로 고치기도, 고장 사실을 인지하기도 힘들어졌다. 지난 2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가 대표적 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코레일 역시 비용을 최소화하느라 차장 없이 기관사 혼자 열차를 운행하는 1인 승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노조 관계자는 “열차 운행 중 사고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관제센터 보고와 안내방송, 안전조치 등 모든 대처를 기관사 1인이 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구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와 가습기살균제 사고 등 유해화학물질사고를 겪은 뒤 화학물질 피해를 막기 위해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법 제정 과정에서 크게 후퇴한 것은 업계의 압력에 밀린 경우다. 애초 법률안에는 모든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하도록 했지만 결국 시행령에서 1톤 미만은 간이등록으로 후퇴했다. 화학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도 재계 반발로 과징금 규모가 매출액의 10%에서 5%로 축소됐다.
화재나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히는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을 정부가 규제의 테두리 안에 넣지 못하는 것도 기업 논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장은 연면적 1,000㎡(302.5평) 미만(68개 업종), 창고는 3,000㎡(907.5평) 미만에 한해 샌드위치 패널이 허용되는데, 불법으로 용도를 변경하거나 1,000㎡ 미만으로 분할 시공하는 꼼수가 난무해 실상 제한 없이 사용되고 있다. 스티로폼을 대체할 소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불에 강한 그라스울(유리섬유) 같은 무기 단열재가 개발됐지만, 시장에선 외면 받고 있다. 우리나라 단열재 시장에서 스티로폼(유기 단열재)이 차지하는 비율은 70% 이상으로 미국(9%) 일본(25%) 유럽(33%)에 비해 턱 없이 높다.
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스티로폼과 그라스울의 가격 차이가 10%도 안되지만, ‘중소기업 다 죽는다’며 앓는 소리 하는 스티로폼 제조업체와 원료를 제공하는 대기업(정유화학회사)의 요구 앞에 정부가 규제 강화와 단속에 소극적이다”라고 털어놨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대부분 기업들이 안전을 위해 쓰이는 돈은 ‘낭비’라고 인식한다”며 “안전을 도외시해 발생한 사고에 따른 천문학적 손실보다 안전에 투자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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