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월 내부에서 경쟁해 능력 있는 청장(치안총감)을 뽑을 수 있도록 치안정감 자리를 늘려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태안 허베이스피리트호 오염사고와 같은 국가재난적 해양사고가 발생하면 경험 많은 해경 출신의 청장이 있어야 정확한 상황 판단과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청장 후보 풀이 부족하다 보니 해양·선박·국제법 등에 전문성이 없는 외부 경찰청 출신의 청장이 임명되기 십상이라는 이유였다.
12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해경청의 ‘청장, 내부 복수경쟁시스템 구축 건의 자료’에서 해경청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직급 상향(치안감→치안정감) ▦치안정감급 본청 경비구난감 신설 ▦해양경찰학교장 직급 상향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치안정감이 1명(본청 차장)뿐이라 내부 경쟁을 통해 청장을 배출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치안정감 자리는 늘어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3월 김석균 현 청장이 2006년 권동옥 청장에 이어 13명의 역대 청장 중 두번째로 내부 승진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드러난 해경의 해난대응체계는 그동안 부르짖던 ‘내부 청장 체제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고 예방과 대응, 수습 모두 낙제점에 가까웠다. 전문가들은 청장이 해경 출신 여부를 따지기 앞서 정작 해경이 바다를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김 청장조차 1,000톤급 이상 함정 근무 경력이 없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법제처 사무관을 지내다 1996년 경정 특채로 임용됐다.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실에 따르면 경감 이상 해경 간부 716명 중 250톤급 경비정조차 타 본 적 없거나 1년 미만 승선한 경우가 16%(121명)에 달했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해경 간부 대부분이 배를 타봤거나 바다 수영을 해본 경험이 없다”며 “세월호 때도 늑장 출동했고 출동해서도 시간만 까먹었는데 해경이 구조를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구조시스템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의 안전과 치안을 책임진다는 본연의 임무와 동떨어지게도 해경은 바다를 모른다. 구조전담 인력은 전체 인력(전경 포함 1만1,600명)의 2%(232명)에 불과하며 해양안전 관련 예산은 올해 예산(1조1,000억원)의 1.8%(208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실무인력을 뽑을 수 있도록 자체 육성과정도 운영하지 않는다. 거기에 실질적인 구조훈련도 없다. “구조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그저 수사(修辭)가 아니다.
해상근무 안 하면 간부 안 되게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해상근무능력이 없으면 고위 간부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인사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종휘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현장 조직인 해경은 실제 선박 운항이나 (구난구조) 훈련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며 “일본 해상보안청과 같이 해상근무경력이 없으면 고위 간부가 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인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호래 군산대 해양경찰학 교수의 ‘일본 해상보안청의 채용제도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 해경 조직과 유사한 해상보안청의 해상보안관(사법경찰) 대부분을 승선실습과정이 편성된 해상보안대학교와 해상보안학교 출신으로 뽑는다. 졸업 후에는 해상근무에 우선 배속됐다가 육상과 해상근무를 교대로 한다.
노 교수는 “해경은 특채로 80%를 충원하는데 자체 육성과정이 없어 해상실무를 아는 인력을 특채로 뽑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자체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해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유자격자 채용은 극소수”라고 분석했다.
사고지휘 본청 아니라 현장에서
해경 본청 위주의 해양사고 지휘체계를 현장 중심으로 개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9·11 테러 당시 뉴욕 소방서장이 현장에서 전권을 쥐고 인명구조를 지휘한 것처럼 해경도 해양경찰서장 등의 지휘권을 강화하고 본청은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구해야 할 소중한 시간을 사고지역에서 본청으로 보고하는 데에 날려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중·하위직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하고 지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책임 전가 시스템을 바꿔 경위, 경감 등에 책임과 권한을 함께 줘야 한다”며 “현장에서 최대한 대응하도록 해야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부들부터 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명령만 따르려는 것”이라며 “조직을 수평화하고 현장 실무 중심으로 권한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민관군 합동훈련으로 대응력 키워야
현장에서 사고수습을 지휘하려면 평소 철저한 훈련이 필수다. 해경은 ‘서남해안 해양사고 대응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연간 4차례 훈련을 가지지만 대부분 평가 위주다. 항해, 안전, 병기, 정비, 전기·전자, 통신, 방제 분야가 대상이었다. 구조구급 훈련이 있었지만 인공호흡, 응급처치 위주였다.
임채현 목포해양대 기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해경이 평상시에 제대로 훈련이 돼있었다면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신고를 받고도 헤매거나 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출동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조훈련에는 해경뿐만 아니라 지역의 민간 구조단체와 해군의 전문인력을 아우르는 민관군 합동훈련이 필수다. 다만 해경이 이들의 출동을 지시하고 구조작업 전반을 지휘해야 한다. 윤종휘 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양사고를 미 해안경비대가 전담해 수장을 현장 지휘관이 맡는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의 수색구조 매뉴얼도 소형 어선이나 기름 유출 등 오염사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세월호 참사 때 무용지물이었다. 이 매뉴얼을 보면 ‘전복 선박 발생시 체크리스트’에 취침, 작업 중인 선원들의 위치 파악 항목은 있지만 여객선 승객 대상 항목은 없다. 매뉴얼에는 ‘사고 발생시 신속한 구조함정 투입’ ‘일사불란한 위기 대응 체계 확립’ 등이 명시돼 있지만 말뿐이었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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