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해외 건축전문 사이트 ‘디자인 붐’에 한국의 실험주택이 하나 소개됐다. ‘6×6 주택’이란 이름이 붙은 이 집은 가로 6m, 세로 6m, 높이 9m의 좁고 높은 주택이다. 정영한 스튜디오아키홀릭 소장이 아이 없는 부부와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를 위해 설계한 집으로 2014, 15년쯤 시공할 예정이다.
건축면적이 33㎡(10평) 남짓하지만 잔디 마당, 테라스 2개, 대형 견들을 위한 널찍한 공간까지 알뜰하게 갖췄다. 정 소장은 작은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베란다 확장 같은 소극적 접근보다 공간이 가진 가능성을 적극 실험하는 쪽을 택했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다. 집 중앙을 관통하는 사각형의 퍼니처 코리도는 싱크대, 화장실, 냉장고, 가구, 옷장, 수납함, 환풍시설, 기계설비, 그리고 계단까지 수납하는 일종의 시설 탑이다. 건축가는 주거의 필수 요소들을 3×3m 크기의 퍼니처 코리도 안으로 모조리 밀어 넣은 다음 그 둘레의 공간들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공간이 가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공간을 정의하는 것은 거기 놓인 가구입니다. 침대가 놓인 곳은 침실 외에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개의 공간이 필요해지고 이것 때문에 집도 넓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가구가 없어지면 집에 있는 모든 공간을 다용도로 쓸 수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퍼니처 코리도의 시설을 이용한 뒤 거기에 달린 미닫이 문 등을 닫아 시야에서 차단할 수 있다. 싱크대와 옷장이 사라진 공간은 침실이 됐다가 서재가 되고 다시 응접실로 바뀌기도 한다. 건축가는 여기에 층의 개념까지 없앴다. 층고는 3층 높이지만 안에는 수없이 많은 층이 존재한다. 한치의 공간도 놀리지 않고 사용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가령 1층 리트리버 우리는 개들만 다니는 곳과 사람이 개와 교감할 수 있는 곳의 층고가 각기 다르다.
6×6 주택은 지난해 인사동 낳이 갤러리에서 열린 ‘최소의 집’ 전시의 출품작이다. 당시 3명(팀)의 건축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의 집을 제안했다. 가로 세로 각각 2.7m 크기의 방에 툇마루와 주방, 화장실을 붙인 6m의 높이의 한 칸짜리 집, 가로로 긴 일자 형태의 집에 침실과 사랑방, 서재가 나란히 들어선 40㎡(12평), 43㎡(13평) 크기의 집. 이 집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규모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집을 향한 태도다. 누군가가 만든 기준에 순응해 132㎡(40평)형대 아파트를 사고 또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처럼 거실에 대형 소파를 들여놓는 오늘날의 행태를, 이 집들은 정면으로 힐난한다. 집을 둘러싼 인식 변화의 거대한 흐름, 그 중심에 ‘작은 집’이 있다.
지금, 왜 작은 집인가
건축가 부부 임형남 노은주씨가 함께 쓴 책 작은 집 큰 생각에는 두 사람이 설계한 금산주택의 탄생 스토리가 나온다. 충남 금산시 진악산 앞자락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건축주의 요구는 간단하다. ‘책을 위한 공간이 있을 것, 작고 검박할 것, 주변 집들과 어울리면서 튀지 않을 것’. 건축주의 이 소박한 요구는 우리가 집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체형과 취향, 직업, 가치관, 이웃에 대한 생각, 세상에 대한 사유가 모조리 녹아 있는 삶의 집결체다. 책을 위한 집, 개를 위한 집, 음식을 위한 집, 음악을 위한 집…집을 과시나 투자의 대상이 아닌, 삶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한다면 집의 형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아야 정상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왜 작은 집이어야 할까. 일본 작가 다카무라 도모야는 “집의 크기를 삶의 가치와 동의어로 여기는 세상에 대한 선언적 의미”라고 표현했다. 일본 근교의 산자락에 10㎡(3평) 남짓한 집을 짓고 사는 그는 지난해 미국의 스몰하우스 운동을 조명하는 책 작은 집을 권하다를 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 내 집과 비슷한 ‘작은 집’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가가 바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물질문명의 최첨단을 달려온…미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스몰하우스 운동’의 원인 중 하나로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든다. 경제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집을 택하게 된 이들이다. 그러나 스몰하우스 운동을, 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작은 집 열풍의 진짜 주역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집세나 기타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주거 공간에서 자유롭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 큰 집을 지어 환경에 부담 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큰 집이 아닌 다른 일에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 조용히 책을 읽고 사색할 공간을 갖고 싶은 사람, 그냥 작고 소박한 생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다양함만큼이나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다카무라 도모야는 미국 곳곳에 퍼져 있는 작은 집의 주인들을 만났다. 그 중 그레고리 존슨의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인생을 통째 다이어트한다’는 테마 아래 2003년 스몰하우스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곧 큰 장벽에 부딪혔다. 바로 소유물과의 이별이다. 150㎏의 거구인 그가 13㎡의 집에 살기 위해선 수많은 물건과 작별해야 했다. 존슨은 단칼에 헤어지는 것 보다 천천히 이별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창고에 물건을 넣어 눈에 보이지 않게 한 뒤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 물건이 정말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그때 처분했다. 존슨은 이 방법을 통해 자신과 소유물의 관계를 면밀히 따질 기회를 얻었고 ‘나는 무엇을 우선시하며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해 나갔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은
한국일보가 매주 수요일 연재하는 ‘작은 집에 살다’는 근 3년 내 한국 곳곳에 지어진 작은 집들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의 동기 또한 미국 스몰하우스의 주인들처럼 다양하다. 비우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투자 목적으로 작은 집을 지었다가 그냥 눌러 앉은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작은 집이 가진 고유의 힘은 거주자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시리즈에 나오는 집은 규모에는 제한을 뒀지만 건축비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청빈한 삶은, 작은 집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지만 개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시리즈의 목적은 욕망의 절제가 아닌, 오히려 욕망에 대한 직시다. 남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충족하자는 제안이다. 작은 집의 주인이 되기 위한 요건은 어쩌면 검소함이 아닌 자신의 필요에 대한 확신일지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청빈하고 소박한 집주인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손바닥만한 집에 살면서도 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오디오 세트를 포기하지 않고, 어떤 이는 결혼과 육아에 들어갈 돈을 거대한 서재와 테라스에 투자한다.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가감 없이 발현된 집주인의 욕망은 건축가들에 의해 현실이 된다. 작은 집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인 건축가들은 천양각색의 삶이 어떻게 건축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를 우리 눈 앞에 펼쳐 보여준다. 공간에 대한 건축가들의 천부적인 감각과 상상력은, 실제로 작은 집을 지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흥미진진하게 읽힐 만하다. 또 시리즈 전반에서 드러날 건축주와 건축가의 교감 과정은,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재미 없이 주어진 공간에 반응하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6X6 주택 건축개요
대지위치 강원도 홍성군 둔내면 두원리 12의 18
대지면적 768㎡
건물규모 3층(3m 층고 기준)
건축면적 36.6㎡
연면적 55.80㎡
건폐율 4.76%
용적률 7.26%
최고높이 9m
구조재 철골+목조
지붕재 아연도 강판
단열재 내단열 방식
창호재 시스템 창호
내벽마감재 석고보드 위 도장
바닥재 건식온돌 위 마루
설계자 건축가 정영한 + 스튜디오 아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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