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 땐 안전관리 담당한 공무원에 실질적 책임 지워야
서해 훼리호 삼풍 등 공무원 솜방망이 처벌
쉽지않은 형사처벌보다 인사상 불이익 주거나 연금, 재취업 제한 가해야
재난위험시설 안전관리 실태 감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감사원은 충남 서산시 앞바다의 해저송유관을 조사하다 깜짝 놀랐다. 유조선에서 육지의 저장탱크로 원유를 보내는 통로인 해저송유관은 관련 규정상 해저면 아래 1~2m 깊이에 매설돼야 하는데도, 전체 4.5㎞ 구간 중 2.3㎞나 해저면 위에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이 곳을 지나던 선박의 닻 등에 의해 노출된 송유관이 파손되기라도 하면 대형 해양오염사고가 일어날 뻔했다는 얘기다.
송유관 시설을 관리하는 현대오일뱅크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밀안전진단을 외부 용역업체에 맡겼지만 용역업체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임의로 A등급(최상)을 매겼다. 그런데도 지도ㆍ감독기관인 서산시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산시 관계자는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한 우리로선 ‘문제 없다’는 전문업체의 점검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 실태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 서류들은 서산시는 물론 시설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에서도 그대로 무사통과됐다. 선박안전관리를 해운조합과 한국선급 등에 위임하고 정부가 감독에 팔짱만 껴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의 그림자는 사회 곳곳에 있는 것이다.
규제 강화한 만큼 공무원 책임 커져야
전문가들은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안전관리 실명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허가와 안전감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것을 가리킨다. 규제만 강화하고 공무원들에게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 정부의 힘이 커져 ‘민관 유착’의 부작용만 생기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위기관리시스템 구축을 주도했던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안전 의식이 높은 수준이라면)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는 사실 최소화되고 최후의 장치가 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부실공사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의 문화나 현실에선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를 직접 일으킨 기업만이 아니라 관리소홀 등 간접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도 함께 일벌백계해야 안전관리를 내실화하고 유착관계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킨 참사 때마다 공무원들은 대부분 처벌을 면했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1993년 292명 사망에 이른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 안전점검 일지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공무원 4명에겐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1995년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도 마찬가지다. 뇌물을 받은 2명만 실형을 살았을 뿐, 함께 기소된 11명의 공무원에게는 집행유예 또는 기소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사고 유발에 직접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의 대부분 민간사업자들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직무유기죄 역시 대법원 판례상 직장 이탈 등 명시적인 직무 포기일 때만 성립될 뿐이어서, 안전감독을 소홀히 한 공무원들한테는 적용이 불가능하다. 정부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 데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연금과 재취업에도 불이익 줘야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책임을 묻기 위한 법 개정은 과잉처벌 논란이 있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행정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있는 공무원은 물론 감독소홀 등이 적발됐을 경우 업무 담당자에게 엄한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안전감독을 게을리한 공무원은 기록을 남겨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연금혜택과 재취업 등에서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증이 쉽지 않은 민형사 책임을 묻는 것보다 징계처분을 강화하는 게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형사처벌이란 결국 ‘사후약방문’에 불과해 형사처벌 대상을 늘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안전 위험 요소가 발견된 것만으로 징계 등 불이익을 줘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선 먼저 직업공무원 제도 안정화를 통해 ‘관피아(관료+마피아)’ 같은 유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감독 등을 맡은 유관기업에 공직자 취업을 제한하고 전문성을 높여 유착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뜻한다.
법조계에선 공무원 개인의 민사책임을 적극 묻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승철 서울변호사회장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고의를 증명해야 하는 형사책임과는 달리, 민사적인 배상책임은 ‘과실에 의한 방조’도 인정되므로 공무원의 책임 범위를 널리 인정받기가 훨씬 쉽다”고 강조했다.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조직해 사고를 유발한 기업뿐 아니라 공무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판례를 남길 필요가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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