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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초동대응은 지역 재난담당 공무원들 역량에 달렸다

입력
2014.05.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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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처 중심 재난시스템 현장과 따로 놀면 실효 기대 못해

재난안전 담당 10명 중 7명이 스스로 “전문성 없다”응답

순환보직 배제·훈련 강화 절실

인력·장비 즉각 동원 가능토록 민간 네트워크와의 협력도 필요

세월호의 침몰은 기업과 정부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됐지만, 이 사고가 희생자 304명(21일 현재 사망 288명, 실종 16명)이라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은 누가 뭐래도 미흡하기 짝이 없었던 초동대응 때문이다. 해경 122구조대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가장 먼저 현장에 온 경비정(123정)은 선내 진입해 승객을 퇴선시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진입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구조 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결정적 오보가 나왔고, 현장의 급박한 분위기는 한참 뒤늦게야 감지됐다. 인명 구조에 가장 중요한 시간인 이른바 ‘골든 타임’은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 결과 “객실에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만 믿었던 승객들은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 버렸다. 초동대응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했더라면 이 정도로 참혹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 최소화하려면 초동대응이 결정적

사고는 일단 발생 자체를 막는 게 최우선이지만, 그 다음의 목표는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역시 초동대응이다. 사고 발생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구조인원이 빨리 현장으로 이동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다. 재난대응에 있어 지방자치단체나 각급 기관 지역본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골격이 드러난 ‘국가안전처’ 중심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해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자체의 현장대응 역량 강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 가운데 지자체의 재난대응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난대응 능력이 ‘낙제점’에 가깝다는 점이다. 21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받은 ‘17개 시ㆍ도 재난담당공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240여개의 시ㆍ군ㆍ구 별로 재난담당공무원은 최대 75명(대구 서구), 최소 4명(인천 강화군)씩 배치돼 있다. 수적으로는 재난이 발생해도 초기대응에 문제가 없을 만큼 인력이 충분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실상은 딴판이다. 가로정비팀, 하천팀, 공원관리팀, 건설행정팀 등 재난대응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부서나 평소엔 다른 업무를 하다 비상상황에만 긴급 투입되는 인력도 ‘재난담당’으로 묶는 경우가 허다하다.

41명의 재난담당공무원을 두고 있는 수도권 한 지자체의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모든 업무에 안전이 부수적으로 들어가 있어 재난담당으로 묶인 것이지 딱히 안전을 ‘전담’하는 직원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재관리팀의 경우, 평시엔 배수펌프장 관리 업무를 맡고 폭우가 쏟아지면 비상근무하는 체제로 돌아갈 뿐이다. 때문에 실제로 재난이 터져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고 지자체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평소에도 매뉴얼을 만들어 숙지하고 동원 가능한 장비나 인력, 민간네트워크를 점검해 언제라도 재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지금 수준이라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으니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게 되고, 소중한 시간만 흘려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작성한 ‘재난관리 역량 진단을 통한 교육 훈련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전국 지자체의 재난안전분야 공무원 2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재난담당 공무원한테 전문성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2.6%에 그쳤다. 10명 중 7명은 전문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이수한 재난 관련 교육ㆍ훈련에 대해서도 72.9%가 “실무와의 연계성이 떨어진다”고 평가절하했다.

전문성 결여의 원인은 공무원 조직의 순환보직 특성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 3년 이상 재난분야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은 19%에 그쳤고, 2~3년인 비율도 14%뿐이었다. 재난담당은 ‘잘 해야 본전’이라는 인식 탓에 기피 대상 업무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재난관리에 있어 ‘인적 역량’ 점수는 4점 만점에 2.06점에 불과했다.

지자체-중앙정부 유기적 협업 시스템 절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재난대응 역량 제고를 위해선 지자체의 자구 노력은 물론,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재은 교수는 “(신설될 국가안전처의) 담당 부서가 지자체 공무원에게 내실 있는 교육ㆍ훈련을 실시해야 하고, 지역 특성에 맞게 장비도 보급해야 한다”며 “단, 퍼주기 식의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안전 분야 예산도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하는 지자체에 대해 선별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호 광운대 교수(건축공학)도 “실무자는 물론 간부급에 대해서도 국가안전처에 정기적인 파견을 보내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연계고리를 형성하고, 도 단위의 거점센터나 지역협력관 제도 등도 함께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자체 재난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유사 시 ‘컨트롤타워’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상호 유기적인 협업 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원호 교수는 특히 “전문성 결여는 대부분 순환보직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재난 관련 부서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이 80~90%가 되도록 하고 순환보직 대상에서도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조직학회장을 지낸 이창길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안전처 구상은 정부 내 협력만 강조할 뿐, 정작 민간과의 협력 이야기는 없다”며 “권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보단 ‘가치’를 공유하기 마련인 지역의 민간기구들과의 협력이 더 잘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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