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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수로…'진짜 야생' 부시크래프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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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수로…'진짜 야생' 부시크래프트의 세계

입력
2014.05.2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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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수로 돌아가는 아웃도어, 부시크래프트. 이광낙 제공
자연의 순수로 돌아가는 아웃도어, 부시크래프트. 이광낙 제공

첨단 캠핑 장비에 의존 않고 최소 도구... 배낭 하나 메고 떠나

칼 사용법과 매듭 묶기가 기본 기술... 자연속에서 스스로 의식주 해결

국내 보급은 아직 초기 단계... 수백명이 알음알음 기술 공유 즐겨

H사의 텐트 116만원, A사의 침낭 128만원, S사의 매트 32만원, N사의 타프 36만5,000원, G사의 배낭 85만원, S사의 코펠 46만원, 그리고 그걸 다 싣고 다닐 F사의 픽업 7,500만원….

캠핑에 미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아웃도어가 아니라 아웃도어 장비에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오토캠핑장 풍경이란, 돈으로 따지자면 거의 전셋집을 한 채씩 몰고 와 부려 놓는 장비 수집가들의 박람회장 같다. 그런데 당일 산행용 작은 배낭 하나만 달랑 짊어 매고 캠핑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배낭을 열어보면 청동기 시대 선조들이 쓰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구만 있다. 그래도 훨씬 깊숙한 자연에서, 훨씬 다이내믹한 아웃도어를 즐긴다. 일반 캠핑과 구분해 그들이 즐기는 아웃도어를 부시크래프트(bushcraft)라고 부른다. 그건 또 어떤 세계일까.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 원초적인 아웃도어 액티비티에 대해 알아보자.

Q. 부시크래프트가 무슨 뜻인가.

A. 부시(bush)는 덤불이라는 의미이고, 크래프트(craft)는 흔히 기술로 번역된다. 최소한의 장비로 아웃도어를 즐기는 레포츠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등반에 빗대 설명하자면, 전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정상을 정복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급적 장비 사용을 줄이고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알피니즘의 기본이 됐다.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유가 기계문명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부시크래프트는 편리한 첨단 캠핑 장비를 사서 쓰는 대신 자연 속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구하는 과정을 즐기는 고전적 캠핑이라고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TV에 나오는 서바이벌과 같은 것인가.

A.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부시크래프트의 대중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맨 버스 와일드(Man vs. Wild)’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부시크래프트 기술을 습득하는 마니아가 늘고 있다. 그러나 서바이벌과 부시크래프트는 구분해야 한다. 서바이벌은 자연 속에서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기술, 혹은 행위를 말한다. 그건 레포츠나 레크리에이션이 될 수 없다. 부시크래프트란 조상들이 했던 것과 흡사한 방식으로 자연 속에 지내며 자연을 즐기는 레포츠다. 물론 그 기술을 익혀두면 재난을 만났을 때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롱텀(long-term) 서바이벌’이라고도 하지만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더 짜릿한 경험을 위해 조난 상황을 스스로 유도했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닥칠 수 있다.

부시크래프트의 필수품인 로프를 자연에서 얻은 재료(풀, 나무껍질...)로 만드는 모습. 이광낙 제공
부시크래프트의 필수품인 로프를 자연에서 얻은 재료(풀, 나무껍질...)로 만드는 모습. 이광낙 제공

Q. 주로 뭘 하면서 즐기나? 무인도에서 불 피우고 그런 얘기가 많던데.

A. 산촌에서 자란 30대 이상이라면 어릴 때 아무 장난감 없이도 산 속에서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기억할 것이다. 부시크래프트의 매력은 현대화한 생활로 인해 잃어버린 그 즐거움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보다는 고전 서부영화를 떠올리는 게 나을 것이다. 황야에서 하룻밤 묵게 될 때 하게 되는 모든 행위가 부시크래프트다. 추위를 피할 쉘터를 만들고, 물을 구하고, 먹을 걸 구해 와서 불을 지펴 요리하고, 별을 보고 다음날 갈 길을 결정하는 행위들 말이다. 본질적으로 캠핑과 같다. 하지만 파는 것을 사서 쓰는 대신 자연 속에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 다르다. 부시크래프트라고 하면 보우드릴(나무의 마찰력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방법)부터 떠올리는데 그건 극히 일부분의 기술일 뿐이다. 사실 부시크래프트에서 불 피우는 건 그다지 권장하지 않는다.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몸을 조금 따뜻하게 하려고 불을 피우려 들다가 진짜 조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자신만의 도구를 만드는 일종의 자연 공예인 우드크래프트가 있다.

겨울철 얼음으로 빛을 모으면 불을 피울 수 있다. 김종도 제공
겨울철 얼음으로 빛을 모으면 불을 피울 수 있다. 김종도 제공

Q. 필수적인 기술이 있을 것 같다.

A. 칼 쓰는 법과 매듭 묶는 법이 가장 기본이다. 자연에서 칼 한 자루만 있으면 못할 게 거의 없다. 작은 칼로도 바토닝(굵은 나무를 자르는 것), 초핑(나무를 찍어 쪼개는 것)이 가능하고 도끼나 톱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우선 그 기술을 숙달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매듭법을 익혀두면 사냥이나 낚시도구를 만들어 음식을 구하고 쉘터나 뗏목을 만들어 몸을 보호할 수 있다. 로프가 없다면 칼로 풀을 잘라 만들면 된다. 사실 다른 모든 기술은 칼과 매듭,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물과 불이다. 조난을 당했을 때 물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생존 여부와 직결된다. 여과, 증류, 증산 작용 등을 이용해 물을 얻는 방법이 다양하다. 불 피우는 법도 여러 가지다. 만약을 대비해 캠핑이나 등산을 갈 땐 파이어스틸(부싯깃을 놓고 쇠로 긁기만 하면 불을 옮겨 붙일 수 있는 금속) 하나쯤은 챙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응급처치법을 익혀둬야 한다. 자연 속에선 다칠 수 있는 확률도 커지기 때문이다.

나무를 깎아 자신만의 도구를 만드는 우드크래프트는 부시크래프트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광낙 제공
나무를 깎아 자신만의 도구를 만드는 우드크래프트는 부시크래프트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광낙 제공

Q,. 준비해야 할 장비는 무엇인가.

A.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보통 날이 두꺼운 칼과 로프(8㎜ 굵기의 30m짜리가 적당하다), 판초, 타프 정도면 된다. 35리터짜리 소형 배낭에 충분히 다 들어가는 양이다. 그것도 꼭 쓸 일이 있을 때만 꺼내 쓴다. 자연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며 동화되어 즐기는 것이 부시크래프트의 본질이다. 1박 이상을 생각한다면 이른바 서바이벌키트를 준비하면 좋다. 이것도 준비하는 사람에 따라 구성품이 다른데 파이어스틸, 손도끼, 소금, 낚시도구, 콘돔(물을 보관하는 데 유용하다), 의약품 등이다.

Q. 부시크래프트를 즐기는 인구는 얼마나 되고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캠핑 인구가 수백만명이라지만 부시크래프트는 아직 보급의 초기 단계다. 여러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은 1만, 2만명 정도 되지만 실제로 즐기는 사람은 수백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법규정도, 전문교육기관도 없기 때문에 기존 캠핑 문화에 대한 반발을 가진 사람들끼리 알음알음으로 부시크래프트 기술을 전하고 즐기는 수준이다. 주한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교범이나 유럽의 관련 서적이 교과서처럼 쓰이지만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규모가 있고 경험자가 많은 인터넷 카페로 네이버 부시크래프트 카페(cafe.naver.com/bushcraftcafe)가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도움말= 김종도(서바이벌캠프(www.survivalcamp.co.kr) 교관ㆍ아웃도어핸드북 저자)

이광낙(부시크래프트코리아(http://ibbai2882.wix.com/bushcraftkorea)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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