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방지위·상설특검 등
정권 출범 때마다 개혁 시도
공무원들 조직적 저항에
번번이 용두사미로 끝나
땜질식 처방으론 한계
공직자윤리법·채용시스템 등
기존 제도 허점 보완하고
관료에 집중된 권한 분산을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입법 예고된 것은 2012년 8월. 직무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 액수의 5배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하지만 9개월 뒤 나온 최종안은 처벌 대상을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공직자로 한정하고, 처벌도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대폭 후퇴됐다.
법무부를 필두로 한 공무원 사회의 저항 때문이었다. 법안을 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동료 장관으로부터 “어디까지가 청탁이고 민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등의 격렬한 반대의견을 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2012년 11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을 한달 앞둔 시점에 “고위공직자의 비리 수사를 위해 상설특검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정치쇄신 공약을 발표했다. 특검을 상설화해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의 중립성과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공약은 수사기능의 중복이 우려된다는 검찰과 법무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상설이 아닌‘제도특검’ 형태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이후 출범한 정권들은 임기 초반 예외 없이 공공부문 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오랜 기간 견고하게 결성된 관료사회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혀 매번 용두사미로 끝나곤 했다.
2002년 공직사회 부패척결을 위해 최초로 설립된 별도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가 2005년 청렴위원회로 바뀌고,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주요 기능이 안전행정부로 넘어가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비리를 검사하겠다고 하자 지방국세청 공무원들이 집단 휴가를 내버려서 세무 업무가 마비돼 결국 조사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며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공무원들의 저항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사회 개혁시도가 반복되는 만큼 관료 조직의 내성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해선 땜질식 처방이 아닌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족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직자윤리법과 공공기관 채용 시스템 등 기존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는 한편 국회와 시민사회의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정 관료 조직에 지나치게 권한이 몰려 있는 구조를 개혁하는 등의 국가 행정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선 공직자윤리법 등 기존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퇴직공직자 사기업체 취업 심사 등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는 지적이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안대희 총리 후보자의 전관예우 논란에서 보듯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직자가 유관 기업체에 나가는 것은 막고 있지만, 반대로 관피아 경력의 변호사들의 공직 취임 제한 규정은 없는 등 허점이 많다”며 “벌칙 조항을 강화하는 등의 개정을 통해 법률적 장치를 튼튼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는 견해도 있다. 안행부 국장 출신 이창길 세종대 교수는 “공공기관마다 채용을 위한 심사위원회가 있는데도 행정권력과 정치권력이 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게 문제”라며 “공공기관에 자율권을 주되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을 통한 감시체계를 잘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행정부가 내세운 공약이 선거를 거치며 정책화되더라도 입법과정에서 후퇴되거나 좌초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황태순 위즈덤연구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관료 개혁에 있어서 국회와 행정부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가깝다”며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들고 나와도 공무원들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로비를 펼쳐 법제화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각종 이권이 얽힌 협회 설립 등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국회도 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료들에게 집중돼 있는 권한을 분산시키는 행정시스템의 개혁을 주문하는 주장도 나온다. 전성인 교수는 “관피아의 간판 격인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가 형성된 것은 감독권과 인허가권을 모두 관료들이 쥐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며 “일부 기능은 과감하게 민간에 맡기는 등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관료 출신들의 공공부문 채용을 원천 봉쇄하는 것에는 반대 의견도 나온다. 이창길 교수는 “사회적으로 볼 때 관료 출신을 넘어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원천적인 취업 제한보다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황태순 수석연구위원은 “관료들의 전문성이라는 게 월등한 수준도 아닐뿐더러 과거와 달리 민간부문의 역량도 많이 올라갔다”며 “관료 출신으로 퇴직한 뒤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는데, 어떤 대가를 바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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