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단 비상등 꺼져 있고
닫혀 있어야 할 방화문 활짝
"영화 자주 보는 편인데..."
시민들은 불안 불안
방화셔터 내려올 자리에
화분 놓은 공공도서관도
26일 오후 10시 서울 중구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화재 발생 시 화염과 유독가스를 차단하기 위해 항상 닫혀 있어야 하는 방화문 중 하나가 활짝 열려 있었다. 심야 상영관에는 새벽까지 관람객이 머물지만 3개의 비상계단 중 한 곳은 탈출로를 안내하는 비상등도 꺼져 있었다. 영화관 관계자는 “방화문은 원래 닫혀 있는데 청소시간이라 열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심야 상영관이 있는 근처의 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 비상구는 ‘계단 이용시간 종료’가 적힌 안내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직원 전용’ 표지판이 붙어 있는 또 다른 비상구 문을 열자 공사용 자재 옆에 모여 있는 인부들이 나타났다. 3개의 비상구 중 밤에 이용할 수 있는 비상구는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서울 동작구의 또 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방화문은 열려 있었고, 지정된 위치에 있어야 할 소화기는 열린 방화문이 닫히지 않도록 괴는 용도로 쓰였다. 비상등 하나는 화재 시 이용하면 안 되는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가 발생한 날이었음에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서울 시내 다중이용시설 곳곳에는 안전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방화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진 화재 참사는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화재 발생 하루 뒤인 27일 서울 강남구 한 전자상가 건물 1층은 화재 시 방화셔터가 내려져야 할 위치에 쇼핑카트와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다. 1층에 입점한 대기업 슈퍼마켓에서 쓰는 물건들이다. 바로 옆 비상계단 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찜질방 입구에 설치된 소화전은 바로 옆 식당에서 사용하는 조리기구가 가로 막고 있었다. 찜질방 내부 소화기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화기 표지판만 있고 정작 소화기는 없었다. 소방대피로에 표시된 비상구 2곳 중 한 곳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공공시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초구의 한 공공도서관은 2층 로비 방화셔터가 내려올 위치에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지하 1층 디지털도서관 출입구 주변 방화셔터 아래에는 무인단말기가 설치됐고, 본관 지하 1층 비상구 통로는 사무집기와 소파 차지였다.
관악구의 모 대학 중앙도서관 4층은 신분증을 맡기는 곳이 유일한 출입문이었다. 3층으로 연결되는 세 개의 비상구는 열람실 출입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모두 막아놓았다.
몇몇 다중이용시설들은 취재 뒤 부랴부랴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출입문이 활짝 열리면 방화셔터가 내려올 수 없는 구조인 노원구의 한 멀티플렉스에선 영화관 관계자가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을 감안해 일단 출입문이 90도까지만 열리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문을 뜯어서 여는 방향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쇼핑몰 위에 자리잡은 서대문구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야간에 두 개의 비상구 중 하나가 1층에서 막혀 나갈 수 없는 구조를 즉시 개선하기로 했다. 영화관 관계자는 “비상구 1층 문이 항상 열려야 하지만 쇼핑몰 측이 물품 도난을 우려해 잠근다”며 “건물주와 조율해서 바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잇단 대형 참사에 ‘안전지대가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다중이용시설의 안전 대책에 불만을 쏟아냈다. 사업을 하는 방모(63)씨는 “영화를 한 달에 2번 정도 보는데 갈 때마다 불안하다”며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길이나 나가는 통로 모두 미로처럼 돼 있어 헤맬 때가 많고 비상구 표시도 아주 작아 유사 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매우 위험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4ㆍ여)씨도 “세월호 참사 이후 다중이용시설의 비상대피도나 소화기 등이 실제 재난 상황에서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글?사진=손현성기자 hshs@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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