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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아빠를 탈출 선원들이 외면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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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아빠를 탈출 선원들이 외면했대요”

입력
2014.06.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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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조리원 51일 만에 시신 수습

세월호 참사 발생 52일 째인 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선착장에서 한 불자가 실종자 귀환과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발생 52일 째인 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선착장에서 한 불자가 실종자 귀환과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사흘 전 아빠 얼굴의 까칠한 수염 촉감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올 가을 결혼 예정이었는데 이젠 아빠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해졌어요.”

6일 오전 8시3분쯤 세월호 3층 선원 침실에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조리원 김모(61)씨의 시신이 수습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51일 만이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둘째 딸 민영(28ㆍ가명)씨는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눈물로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것보다 먼저 탈출한 선원들이 버리고 간 그 곳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민영씨는 “아빠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도 그대로 두고 나갔다는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외면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김씨는 세월호가 기울어질 때 주방에서 돈가스를 튀기다 뒤로 넘어져 화상과 심한 머리 부상을 입었다. 선원 침실 앞 통로로 탈출하던 기관실 선원들은 쓰러진 김씨와 동료 조리원 이모(51ㆍ여)씨를 보고도 자신들만 살겠다고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뇨를 앓던 김씨 부인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민영씨와 언니는 승객 가족들에게 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고 뒤 2주 넘게 팽목항에 가지 못하고 목포에서 애를 태우다 뒤늦게 진도로 이동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를 기다리다 삼겹살을 구워 바다를 향해 소주를 따르기도 했다. 민영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색 잘 해달라는 부탁과 아빠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 놓는 것 밖에 없었다”고 쓸쓸히 말했다.

세월호는 호텔 요리사와 중국음식점ㆍ삼겹살집 운영 등 부지런히 일했던 김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자리였다. 약 5개월 전부터 세월호의 조리원으로 근무했고, 이전 1년 동안은 청해진해운의 또 다른 인천~제주 간 여객선 오하마나호에 승선했다. 곧 일을 그만두고 환갑연을 치르려 하던 시점에 변을 당한 것이다. 민영씨는 “아빠는 사고 3일 전에도 ‘학생들이 배에 타는데 아이들 먹을 돈가스가 얼면 안 된다’며 일찍 나가셨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고 말했다.

자상한 친구 같던 아버지의 빈 자리는 민영씨 자매에게 너무나 컸다. 민영씨는 4월 말 정식으로 부모님께 남자친구를 인사시킬 계획이었지만 아버지는 결국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가족들을 떠났다.

그래도 민영씨는 “아버지가 좋은 분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의지했던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었다. 민영씨 자매는 이날 딸처럼 아껴준 실종자 가족들을 뒤로 하고 아버지 시신을 헬기에 싣고 진도를 떠났다.

진도=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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