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ㆍ무력한 국가 책임은 내각보다 청와대가 크다
본때 보이기 아닌 공정한 문책 인사가 개혁의 출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를 생각한다. 눈물을 삼키며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이다. 대의를 위해서 아끼는 장수라도 그 잘못을 엄하게 추궁함으로써 조직의 기강을 세우고 권력의 공정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금언이다. 중국 삼국시대 후반, 제갈량과 사마의가 대치했다. 첫 전투에 임한 제갈량은 마속이 솔선수범 나서자 ‘방어’ 명령을 주며 중임을 맡긴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마속은 개인적 판단으로 ‘공격’을 선택했고, 거꾸로 ‘방어’를 들고나온 사마의에게 참패한다. 마속이 처벌을 자청하자, 모든 사람들이 그의 능력과 공적을 거론하며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명령을 소홀히 해 국가에 큰 피해를 입혔음을 지적하고 눈물을 삼킨다.
^6ㆍ4지방선거가 끝나자 청와대대변인은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튿날 국가유공자들과의 오찬에서 “경제회복을 비롯한 국정개혁 과제 전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선거 이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과 관련)국가개혁의 적임자로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개혁, 국가개조, 국정개혁을 위한 발걸음이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국가ㆍ국정의 개조ㆍ개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는 인사다. 청와대는 그 첫 걸음으로 새로운 국무총리를 선정하고, 이어 내각을 대폭 물갈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내각 총사퇴 수준의 인사가 불가피해진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현 내각은 새 정부 출범으로 모여든 최대의 인재풀(pool)에서 몇 달 동안 숙고하여 출범시켰다. 지금 청와대가 선언하고 있는 ‘개혁과 개조’의 무게는 새 정부를 출범시킬 때의 그것보다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구조에서, 특히 박근혜 정부의 권력지형에서 볼 때 비서실장 등 대통령비서진의 정책결정 권한이 국무총리 등 내각의 그것보다 높고 강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더욱 크고 무겁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확실한 의지로 국가를 개조하고 뚜렷한 성과를 내려면 ‘내각 총사퇴’에 앞서 ‘청와대비서진 대수술’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총리 후보자 지명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청와대비서진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내각을 구성하는데 청와대비서진의 능력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현재 사퇴 의사를 밝힌 국무총리는 물론 사실상 사퇴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 일부 부처 장ㆍ차관들에 대해 좀 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이 무력한 정부 탓이기에 장관-국무총리-대통령 쪽으로 원성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총리가 사퇴를 표명했고, 정부는 서둘러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후의 과정은 알려진 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총리 선임이 문제해결의 전부처럼 상징화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초점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무력ㆍ무능하다는 정부를 개조시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일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현직 총리라는 이유만으로, 사고 당시 관련 부처의 장ㆍ차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징적 책임을 묻는 일은 ‘옛날의 철 지난 방식’이다. 참사 발생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따져보아야 한다. 아울러 이후의 수습과 예방 노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능력을 발휘했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이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사고들에 대한 대비책이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 읍참마속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데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공정하고 엄정해야 한다는 것이지, 기강을 잡기 위해서 마녀사냥 하듯이 본때를 보이라는 것은 아니다. 국가개혁, 국가개조, 국정개혁을 위해 누구를 내칠 것인지, 또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박 대통령은 더욱 더 심사숙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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