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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불평등 끄집어 내고 싶어요 김오키만의 연주로"

입력
2014.06.0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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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환과 박재천의 프리 뮤직에는 상처와 아픔을 해소하는 느낌이 있어요.” 김오키는 두 사람의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목표를 넌지시 내비쳤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강태환과 박재천의 프리 뮤직에는 상처와 아픔을 해소하는 느낌이 있어요.” 김오키는 두 사람의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목표를 넌지시 내비쳤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역시 존 콜트레인의 1962년 작 ‘세이 잇’은 명반 ‘발라드’의 첫 곡으로 자리 잡을 만큼 매혹적이다. 색소폰 주자 김오키(37ㆍ본명 김영훈)는 청춘의 격렬한 감성을 담은 프랑스 영화 ‘증오’를 통해 그 곡과 조우했다. 건물 바닥 청소로 그날그날을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김오키라는 독특한 이름은 5년 전 음악에 전념하기로 마음 먹고 붙인 이름이다. “오키나와 놀러 갔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재즈 클럽 들어갔죠. 그곳 주민들은 일본 본토 문화에는 큰 혐오감을, 반대로 자신들의 고유 문화에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키나와 재즈 클럽에서 그곳 사람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의 기억에, 오케이(OK)의 또 다른 말인 ‘오키도키’ 등을 나름 버무려 이름을 아예 ‘오키’로 바꿨다.

여전히 수줍고 말수 적은 그의 내면은 어둠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다. 어렸을 때 덩치가 작고 조용해 놀림을 당했고 때로 돈도 뺏긴 데다 권위적 집안 분위기 탓에 응어리를 풀 길 없어 답답했던 그는 고 2 때 남녀 합반을 하며 춤과 음악에 빠졌다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겠다며 물어 물어 이태원으로 갔다.

“당시의 이태원은 지금보다 더 할렘(흑인 거주지)스러웠습니다. 나이트 클럽이 흥청거리고 디제이들이 넘쳐 나고 홍등가까지….”

비보이 1세대

어두운 청소년기 탈출구

아이돌 백댄서로 활동

브레이크 댄스와 비보잉 등을 마스터한 그는 비보이 대회를 석권하면서 비보이 1세대 멤버의 한 명이 됐다. ‘이미지’란 댄스팀의 일원으로 TV의 가요 프로에 출연해 잭스키스와 임성은 등의 백댄서로 활동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듣던 엠씨 해머 등의 힙합 원형에 몰두했죠. 그냥 랩이 좋아 춤추고 혼자 비트 박스 해가며 논 거죠.”

춤과 음악은 그에게 고독에 저항하는 수단이었다. 운 좋게 군대에서도 통했다. “1998년 입대해 수색대인 파주 101여단에 배치됐는데 오락 시간 때 랩과 힙합으로 단연 인기를 얻었습니다.” 문선대가 막 사라진 그 무렵, 중대장의 허락을 받아 댄스 팀을 만들어 국군방송의 인기팀으로 부상했다. 2000년 말 KBS가요대제전 오프닝 무대의 비보이로 섰던 그는 이후 강남, 신길동 등지의 연습실을 전전하며 외국 댄서들로부터 이론적 기초를 배우고 가수 박남정, KBS 무용단장 김한기 등 최고의 선생들로부터는 실기를 전수 받았다.

청소일하다 만난 재즈

佛독립영화 '증오' 통해

재즈 세계에 입문

그러나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던 만큼 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춤이 생활의 방편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도 컸다. “백댄서가 되기 전에는 신문을 배달했어요. 백댄서는 수입이 월 100만원 남짓이었지만 1997년에는 그 돈으로 나름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제대 후 수입이 없어져…” 그는 청소 용역을 하며 색소폰을 배웠다. 프랑스의 독립 영화 ‘증오’에 더 빠져 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 재즈가 있었다.

좀체 인연이 없었던 서점에 가서 재즈 서적을 사서 읽고 레코드방에 가 재즈 음반을 뒤졌다. 힘든 생활에 차츰 재즈 레코드가 쌓여 갔다. 절대자유의 음악이 그의 본능을 건드렸다. 프리 뮤직 색소폰 주자 강태환과 함께 독보적 경지에 도달한 타악 주자 박재천 팀에 합류, 재즈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프리 재즈와 사회 문제

한계인·난민 등 소재

분노의 순간 앨범에 담아

짐승처럼 소리 지르다 두 세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등 프리 뮤직 어법에 그는 어느새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작년 6월 발표한 첫 앨범 ‘김오키’의 대표작 ‘천사의 분노’는 또 한 명의 강태환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강씨의 음악이 절대 추상이라면 그는 현실을 쉽게 뜰 수 없었다. 첫 앨범은 도시 빈민의 삶을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한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도스토옙스키에 매료돼 있던 2011년, 깊은 분노로 읽은 작품이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어려서부터 장애아, 결손 가정 아이들과 유달리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겹치며 만든 7곡을 첫 앨범에 수록했다. “음악 전체의 콘셉트는 프리 재즈예요. 500장 찍었는데 좋은 반응을 얻어 교보, 핫트랙에서 팔고 지금 20장 남았어요.” 뜻밖의 반응에 당사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중음악이라기보다 아트 록 혹은 프리 재즈에 가까운데.”

그에게는 타인의 삶이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화하는 기제가 있는 모양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분노라고나 할까. 일상에서 순간의 분노가 닥치면 그것을 알려야 한다는 본능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은 물론 음악이다. 보수나 진보의 구호에 치우치지 않는. “숨은 것들, 불편한 것들을 끄집어 내고 싶어요.”

소시민적 문제 의식 같기도 하다. “김수영 시인의 시가 좋은 것은 그래서입니다. 나는 그저 던져놓을 뿐, 불씨가 되고픈 것이지요.” 강퍅한 질문을 유유히 비껴난다. “앨범을 냈을 때 대중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아하고, 제 음악 때문에 사회 문제에도 관심 갖게 됐다고들 합니다.”

그는 LIG문화재단의 2014년 협력 아티스트다. “큰 페스티벌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인디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고마워요.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충격이었죠. 다른 데는 모두 돈을 결부시키거든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저항보다 내가 할 수 있고 하고픈 것만 하고 싶어요.”

녹음을 막 끝낸 2집은 9월 발매된다. 이상의 ‘날개’와 김수영의 시들을 모티브로 정치적 불평등, 한계인ㆍ난민 등을 소재로 한 프리 록 스타일의 신작을 담는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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