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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과 조희연, 그리고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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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과 조희연, 그리고 참여연대

입력
2014.06.0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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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25일 서울 용산역 앞 사창가의 허름한 건물 사무실 한 켠에 돼지머리와 막걸리가 올려졌다. ‘참여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가칭)’ 준비위원회의 입주식이자 상견례 자리였다. 고사상 위의 돼지머리에 빳빳한 지폐를 꽂아 넣었던 사람 중에는 박원순 변호사가 있었다. 이 단체는 두 달 뒤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란 이름으로 창립총회를 연다.

“1980년대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은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길거리에서 벌어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참된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와 정치무대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국민의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일어나야 한다.”

창립선언문 중 한 구절이다. 이 단체는 나중에 길고 복잡한 이름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참여연대’로 개명한다.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건 이 단체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20년전 이 곳에는 박원순 변호사와 당시 서른여덟살 동갑내기인 진보적 사회학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있었다. 박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그룹을, 조 교수는 진보적 학자 그룹을 이끌고 참여연대를 출범시킨 창립 멤버다.

“빠듯한 살림에 참여연대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지인에게 돈 부탁하는 게 내 일이었다. 사무실에 쥐가 많아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 쥐똥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늘 몸이 가려웠다.”(박원순)

“얼마나 일이 많았던지 건망증이 심해졌다. 겨울에 외투를 사무실에 두고 추위에 떨면서집까지 가거나 사무실에 차를 갖고 왔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간 뒤 다음날 차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조희연)

열악한 환경에서 참여연대를 이끌었던 두 사람은 모두 워커홀릭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참여연대에서 간사로 일했던 한 대학교수는 “박원순 당시 사무처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반드시 하도록 만드는 탁월한 실천가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선 (일이 많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반면 조희연 집행위원장은 부지런하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고, 절대 화를 내지 않는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이후 참여연대는 재벌개혁 소액주주운동, 부패정치인 낙천낙선운동 등을 벌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시민운동의 동지였던 두 사람도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역경을 뚫고 성공을 일궈낸 ‘눈물젖은 빵’ 이야기라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주목하는 것은 참여연대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시민운동가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내가 교육감이 되고, 박변이 시장이 되고….” 선거 직후 지인에게 털어놓은 조희연 당선자의 말처럼 두 사람의 현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박 시장에게 현역 프리미엄을 안겨준 2011년 보궐선거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덕분이었다. 냉정하게 따져 조희연 교수의 당선은 고승덕 후보의 친딸 발언 파문에 따른 어부지리로 볼 수 있다.

물론 56.1%(박원순), 39.1%(조희연)의 득표율에는 2년6개월간 시민과 소통에 힘쓴 노력(박원순), 교육 개혁 공약(조희연)이 분명히 반영돼 있을 것이다. 묵묵히 20년 넘게 시민운동을 하며 세상을 변화시킨 두 사람에 대한 기대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득표율에 여야 어느 쪽에도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한 민심이 보인다. 선거 때마다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절묘한 민심’은 “둘이 싸우지 말고 잘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치 세력에 대한 갈망의 표현은 아닐까.

때문에 각종 비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여와 소통, 연대, 개혁으로 상징되는 시민운동 세력에 주목하게 된다. 그 동안 비판 세력에만 머무르다 중앙 정치 무대에 자리잡은 두 시민운동가 동지가 시민들이 기꺼이 마음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지, 아니면 또 다른 한계만 확인시켜줄 지. 모든 건 앞으로의 4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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