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유출 약식기소 불구
법원, 사안의 중요성 감안
직권 회부 가능성도 높아
1급 기밀을 유출해 대선에 이용한 행위를 ‘벌금 5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검찰의 입장을 법원은 과연 받아들일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제기하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유출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법원 안팎에선 적용된 법조항의 애매함과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정치적 중요성 등을 고려해 정식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재임시절 업무상 취득한 기밀을 누설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된 정 의원 사건은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재판부에 배당됐다. 담당 판사는 검찰이 제출한 서류들만 검토해 문제가 없을 경우 검찰이 청구한대로 즉시 약식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 의원은 벌금 500만원만 제출하면 추가적인 형사절차 없이 사건이 종료된다.
하지만 담당 판사가 정 의원의 혐의에 비해 벌금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본다면 직권으로 사건을 정식재판으로 넘길 수 있고, 형사부 중 한 곳으로 재배당된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약식기소 중에는 검찰이 피고인을 봐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 약식기소를 맡는 판사는 그런 사건을 잘 찾아내서 정식재판으로 넘기는 것을 주요 임무로 여긴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학교법인의 자금 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벌금 2,0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정식 재판에 회부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은 “약식 재판보다 정식 재판을 통해 심리하는 것이 적당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죄질을 고려하면 벌금형 처벌은 지나치게 형량이 낮다는 의미이며, 이후 김씨는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정 의원에게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으나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감안하면, 정식재판에 넘겨지더라도 검찰이 동의하지 않는 한 법원은 적용 혐의를 바꿀 수는 없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을 적용하면 검찰이 담당공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처벌이 가능하고,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적용하면 형량이 높아진다.
재경지법의 한 형사합의부 소속 판사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참여정부 인사들 사건 등)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아 정식 재판으로 전환해 충실히 심리를 진행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형사단독 판사는 “(담당 판사가) 대선에 영향을 미친 중요 사건인 점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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