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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않고 수사 끝낸 검찰, 장례 치르자 태도 바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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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않고 수사 끝낸 검찰, 장례 치르자 태도 바꾼 정부"

입력
2014.06.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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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왜 200일 가까이

청와대 앞서 1인시위 벌일까

검찰 "갯골에 빠져 숨졌다" 결론

유족들이 현장검증 요구하자

"기상·조류 상황 똑같이 못 만든다"

유족들 "직접 검증해보니 갯골 없어"

철저히 진상 밝히겠다던 장관은 "수사 개입은 권한 밖" 문전박대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후식씨가 지난 3일 청와대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후식씨가 지난 3일 청와대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지난해 7월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친구를 잃은 공주사대부고의 한 한생이 텅 빈 교실 친구의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주=연합뉴스
지난해 7월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친구를 잃은 공주사대부고의 한 한생이 텅 빈 교실 친구의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주=연합뉴스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 사망! 특검 실시 전면 재수사하라!’

6ㆍ4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이달 3일 청와대 앞 광장.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이후식(47)씨는 지난해 7월18일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사설해병대캠프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5시간 넘게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고는 사설 해병대캠프에 참가 중이던 공주사대부고생들이 구명조끼를 벗고 바다로 들어가라는 무자격 교관의 지시를 따르다 발생했다. 이씨는 당시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고 이병학(당시 17세)군의 아버지다.

학부모들이 생업을 접고 거리에 나선 이유는 현장검증도 없었던 부실수사로 아이들이 숨진 정확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절망감,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가 장례를 치른 뒤 태도가 돌변한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학부모들은 “4개월 넘게 관계 기관을 찾아 호소했지만 부실수사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며 “특검을 도입해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겨울 시작한 1인 시위는 이번 달 말 200일을 맞는다.

현장 검증 없이 마무리된 수사

학부모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현장검증 없이 마무리된 수사였다. 검찰은 당시 학생들이 바다에 형성된 갯골(움푹 파인 웅덩이)에 빠져 숨진 것으로 결론짓고 무자격 교관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한번도 현장을 둘러보지 않고, 피의자 진술만 듣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현장검증을 해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은 “피의자들이 잘못을 시인하는데다 인간의 힘으로 당시 기상과 조류 상황을 똑같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속 터진 부모들이 직접 현장검증에 나섰다. 사고 지역에서 선장과 어민을 수소문해 사고 당시 일기와 가장 비슷한 백중사리(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때)인 지난해 9월1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검증했다. 캠프 당시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사고 지점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갯골은 없었다. 유가족 이후식씨는 “그곳은 딱딱한 뻘로 갯골이 형성될 수 없는 지역이었다”며 “갯골이 없다면 교관이 수심 깊은 곳까지 아이들을 데려간 것인데 그렇다면 과실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참사 직후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학생들의 삼우제를 지낸 지난해 7월 말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미인증 해병대캠프에 하청을 준 H유스호스텔(공주사대부고와 계약한 업체)의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던 태안군청 주민복지과ㆍ해양수산과 공무원이 모두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후식씨는 “사고 지역 일대에 캠프 사용 허가권을 내줄 당시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내용을 확인하려고 군청에 전화했더니 담당자가 바뀌어 모르겠다고만 하더라”며 “사고가 난 지 열흘밖에 안 지났는데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울분이 터졌다”고 말했다. 매년 7월 실시되는 태안군 정기인사에 따른 담당자 교체였지만 허망하게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군청에서 무언가 은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작은 의심은 깊은 불신의 씨앗이 됐다.

해경 합동수사본부가 담당 공무원을 수사하지 않은 것도 불신을 증폭시켰다. 수사본부장은 “수사 인원이 부족한데다 20일 안에 검찰로 송치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 관계자와 교관을 수사하기에도 촉박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수사 인력은 30명에 가까웠고 수사 기간도 2차례 연장이 가능해 40일 가까이 수사할 수 있었다는 게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1심 공판은 10여 차례 모두 20분 이내에 끝났다. 진상규명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유족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수사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사고대책본부까지 꾸린 교육부는 장례식 이후 자취를 감췄다.‘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진실이 은폐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부모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례 치르니 돌변한 정부

“장관 명예를 걸고 양파 껍질 벗기듯 시간대별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주검이 발견된 지난해 7월19일 밤, 시신이 안치된 태안보건의료원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부모들에게 약속했다. 아이들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많았지만 장관 말만 믿고 장례 절차에 합의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후 장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고 했다. 8월27일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정부서울청사까지 찾아온 부모들에게 서 장관은 “법무부 장관도 아닌데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유족들은 여성가족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등 해병대 캠프 참사와 관련된 부처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았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할 수는 없는지, 유명 변호사를 찾았지만 “초동 수사가 부실하면 소용없다”는 말만 들었다.

대통령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해 국민 신문고에 올린 글, 공주대 총장실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내용증명으로 보낸 편지 모두 청와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전지검 서산지청에 보내졌다. 관할 수사기관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나흘 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지시했지만 청와대의 책임 있는 조치는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유족들의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이제 200일 가까이 된다. 다섯 가족이 시작했지만 직장 복귀와 생계를 이유로 현재 두 가정만 1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며 하고 있다. 고 김동환군의 아버지 김영철(50)씨는 “사고 1주기가 다가오는데도 우리는 아직 아이들이 죽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며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충남 예산에서 새벽 차를 타고 와 7시간 이상 시위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진상이 묻힐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세월호 참사도 의혹과 불신투성이다. 일부 유가족은 “해경이 승객을 못 구한 게 아니라 안 구했다”고 주장하고, 생존자들 역시 “구조가 아닌 탈출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태안 해병대캠프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가 태안 사고의 확대판이라고 보고 있다.

침몰 원인, 구조 상황, 수사 과정까지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청와대 앞 1인 시위 200일을 앞둔 해병대 캠프 참사 유족의 모습은 세월호 유족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재난상황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피해 당사자나 유족은 작은 일에도 의심을 하게 된다”며 “이들 눈높이에 맞춰 수시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하며 신뢰를 주는 것만이 사법체계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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