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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답을 구하는, 한국적 대안 연극 꿈꿔요"

입력
2014.06.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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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씨는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계속 만날 수 있는 가족적 유대감이 중요하다”며 극단의 운영 원칙을 말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박정희씨는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계속 만날 수 있는 가족적 유대감이 중요하다”며 극단의 운영 원칙을 말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인연 없는 낯선 휴식 연극의 진화를 향한 샘 솟는 아이디어 채집 과정

극단 풍경의 대표이자 상임연출자인 박정희(56)씨에게 휴식이란 돈 만큼이나 인연 없는, 여전히 낯선 무엇이다. 28세부터 시작한 연출 작업에 그야말로 잔뼈가 굵은 박씨는 지금 강의도 없어 그야말로 모처럼 집에서 쉴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쉰다는 것은 “밑바닥에 한번 닿은 뒤 이완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채집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연극의 진화죠.” 우리 연극 현실에서 꼬질꼬질 연극과 뒹굴어 온 박씨다. 이제 자신과 극단 풍경이 ‘대안적 연극’의 노둣돌로 다시 길 떠나겠다고 다짐한 데에는 저 같은 신념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연극이란 우리 시대 속, 하나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다. 지난해 그는 탈북자를 소재로 한 ‘2인실’, 아버지가 부재하는 집의 자식들 이야기인 ‘아버지의 집’ 등 두 편을 선보였는데 미상불 독특했다.

‘2인실’은 장기를 팔려는 탈북자가 수술 도중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죽는다는 줄거리로 장기 매매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더 잘 하고 싶다. 작년 것은 블랙코미디로 갔으나 다시 한다면 남한의 비인간성을 전면에 세울 생각이다. 진작부터 공동 작업해 온 작가 고영범과 메일을 주고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트라이브스(Tribes)’의 연말 무대화를 두고 씨름 중이다. 농아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소통 문제를 다룬 영국 작품인데 역시 소재가 독특하다.

2006년 아르코소극장에서 공연한 사라 케인의 ‘사이코시스’는 아예 치명적이었다. 자살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소통의 막다른 골목을 섬뜩하게 묘사했다. “세계 제일의 자살률을 가진 나라에서 씻김굿 하는 마음으로 올린 연극이죠.”

묘사는 관객이 보기 불편할 정도로 반사회적이었다. 암흑과 대비되는 조명을, 그는 “배우를 칼로 저며내듯” 썼다. 자기 혐오, 자아 부정이란 추상적 주제가 박정희 식으로 형상화한 무대였다.

종교적 공간은 서릿발 무대 연출 잠시 접고 제정신으로 살게 하는 곳

서릿발 같은 무대 연출의 그는 자신의 에움길로 종교적 공간을 꼽는다. 서강대 옆 예수회센터. 고교 시절부터 천주교 신자였으나 연극일 등을 하며 한동안 멀어졌다가 2009년 다시 신앙으로 회귀하기까지 자신의 여정을 말없이 지켜본 곳이다. 신앙이란 젖줄을 종종 놓아버리는 자신을 제정신으로 살게 하는 곳이라는 말이 피부에 닿는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인정 욕구에 휘둘리게 되죠.” 타인과의 소통에서 치명적인 요소다.

그는 독일서 연극을 공부하고 1995년 귀국해 극단 사다리의 아동극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잊혀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점점 피폐해져 갔다. 그러나 극단 풍경의 첫 작품 ’하녀들’로 큰 상까지 덜컥 받자 이번에는 상에 대한 욕망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순수하지 못하게 됐죠. 찌꺼기를 바라는 거예요.”

마음은 육체에 선행하는가. 당시 찍은 팸플릿 사진 속의 자신을 보면 얼굴에서 생기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어떨 때는 한 달 동안 일을 놓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연극에) 다시 돌아온 것이 2009년이었다. “연극 해서 돈 벌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회, 특히 약자와의 공감이 그 본질이죠.” 진지하지 못한 시대, 연극 그리고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가.

고맙게도 신앙이, 약한 그를 자꾸 붙잡아 들였다. “바람이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 줄 모른다”라는 마테오 복음의 한 구절은 그에게 생명을 주는 물이었다. 이전에는 콘셉트를 잡으면 행여 놓칠세라 안달복달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이른바 ‘여백’을 둘 줄 안다. “제가 8할 정도 굵은 선을 잡으면 나머지는 배우들 각자의 특별한 경험과 정서를 허용하는 거예요.” 풍경 메소드, 박정희 메소드가 정체를 드러냈다.

공동체 연구로서의 연극 단원들과 쉴 새 없는 대화로 연극의 새 틀 만들며 사회의 희망 끝없이 묻고싶어

풍경의 단원들은 사적이고도 심리적인 경험을 나누려 한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거죠.” 대화가 증발된 이 시대 사무실과 정반대의 길을 보란 듯 택한 것이다. 왜 이런? “풍경은 긴밀한 공동체예요.” 움직임에 대한 극단 특유의 과학적 분석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완과 균형이 그 키워드죠.”

그것조차도 그에게는 거대한 꿈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부다. “연극의 새 틀을 만들고 싶어요. 공동체 연구로서의 연극 말이죠.”

군기가 센 연극집단임을 감안한다면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가뿐하게 건너는 법을 알고 있다. “가족적 유대감 말이에요.”

그는 지금 대안 연극을 꿈꾼다. 독일 극단 리미니프로토콜이 실현한 세미 다큐적 연극이다. 연극에 대한 기존 통념, 연극을 왜소하게 만드는 시대적 정황을 밑바닥에서 뒤집는 무대다. 배우 아닌 일반 시민이 무대에 등장해 연극적 상황을 만들어가는 원작을, 광주를 소재로 한국화할 생각이다. “광주항쟁을 암시하는 설문을 배우들이 읽어 가다 객석에 질문을 던지거나 토론하는 식으로 직접 소통해 무대를 만들어 가는 거죠.”

10여 년 전부터 그가 한국 사회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한 끝에 내린 미학적 선택이다. “끝없이 물었죠,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느냐고.” 답은 명확했다. “소수의 연대뿐이죠.”

이제 한국에 공동체란 없다, 문제는 연대의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극이 일어나는 순간만큼은 관객 배우 연출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축제다…그의 논리적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렇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그의 무대는 잃어버린 공동체의 꿈으로 한국인들의 타성과 충돌하고 교호한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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