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서 살아남기 (5회) 인사청문회편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한민구 국방부장관에 이어 7일에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ㆍ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됐다. 10일까지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8명의 후보자들이 도덕성과 능력에 대한 검증을 받게 된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역대 인사청문회 중 가장 세간의 관심이 크다. 국무총리로 지명됐던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가 자질 논란으로 청문회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퇴하면서, 현 정부의 인사 체계가 뭇매를 맞은 직후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한동 국무총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의 주인공이 된 이래 수많은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인사청문회를 치렀다. 누군가는 논란을 극복해냈고, 누군가는 세간에 치부만 드러낸 채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겪었던 혹은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됐던 이들의 사례를 토대로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기 위해 갖춰야 할 4대 덕목을 사자성어로 알아본다.
1. 타면자건(唾面自乾ㆍ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이르는 말)
국무총리와 달리 행정 각부의 장관들은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의 인준이 필요 없다. 거칠게 말하면 인사청문회에서 아무리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장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장관 인사청문회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 두 가지는 어떤 비판에도 초연할 수 있는 인내심과 꼭 임명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섣불리 사퇴했다간 명예뿐 아니라 실리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미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윤 전 장관은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에서 실무 관련 질문에 연신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힐난에도 윤 전 장관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낙천적인 성격을 과시하며 웃음과 혼잣말, 넘치는 자신감으로 의원들의 말문을 막았다. 경과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지만 장관에 임명되는 쾌거를 이뤘다.
2. 면박여츤(面縛輿?ㆍ스스로 손을 뒤로 묶고 관을 짊어지고 사과하는 모양)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초기에 비하면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 2002년 장상ㆍ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는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임명 동의안이 부결돼 낙마한 바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위장전입 정도는 판세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농지법 위반이나 자녀 이중국적 문제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이런 장애물에 봉착한 후보자라면 핑계를 대고 해명하기에 앞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최선이다.
참고할 만한 최근 사례로는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을 들 수 있다. 강 장관은 위장전입과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았다.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로 십자포화를 맞았다. 주민등록법을 관장하는 부처의 장관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거셌다. 강 장관은 해명보다 사과에 방점을 찍었다. “어떤 목적이 됐든 현행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구구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며 “대단히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며 거듭 사과했다. 강 장관 역시 경과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안전행정부 장관에 임명될 수 있었다.
7일 이병기·최양희 후보자 역시 각각 과거 전력과 부동산 세금 탈루 및 농지법 위반 의혹 등에 대해 "백 번 사과드린다, 정치관여라는 말 머릿속에서 지우겠다"(이병기) "거듭 사과드린다, 정말 반성하고 있다"며 최대한 몸을 낮췄다. ☞ 관련기사 보기
3. 득일망십(得一忘十ㆍ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
과거의 이력이나 친인척의 도덕성 흠결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는 것도 답이다. 기억나지 않는 일이고, 관여하지 않아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더 추궁할 수 있는 건 “무책임하다”는 것 외에는 많지 않다.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당시 시세차익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인카드 개인 사용 의혹에 대해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특혜 대출 의혹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하며 공세의 칼날을 피해갔다.
이번에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이 덕목을 잘 실천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연구비 부당 집행 의혹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4. 초록동색(草綠同色ㆍ풀빛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란 뜻으로, 같은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거나 기우는 것)
청문위원들과 같은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날카로운 검증의 칼날을 피하기가 더 수월하다. 정치인 출신 후보자들이 거뜬히 인사청문회를 견뎌내는 현상을 빗대 ‘배지 불패’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2011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첨예한 공방을 펼쳤지만 여당 의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장관직에 올랐다. 지난해 4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올해 3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청문회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한갓진 이유이기도 하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