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울리히 벡 방한 강연
세계적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코스모폴리탄연구소 소장)가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를 탈바꿈하는 동력이 되려면 시민이 이 사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8일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등이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2014 서울 국제 학술대회’에서 벡 교수는 강연자로 나서 자신의 새 이론인 ‘탈바꿈’ (Verwandlung)을 한국 사회에 접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1월 ‘해방적 파국’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던 그는 이날 ‘해방적 파국’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 변혁의 개념으로 ‘탈바꿈’을 제시했다. 기후 변화 등 위험사회를 만드는 요인이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게 아니라 탈바꿈을 통한 해방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다. ‘나쁜 것이 뜻밖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며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다.
벡 교수는 강연에서 청중의 질문을 받고 “세월호 참사는 특수 재앙이며, 나의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참사 이후 한국 국민은 분노했고, 한국 정부는 국민의 ‘좋은 질문’에 ‘나쁜 답변’을 내놓으며 무능, 무지, 무책임을 드러내 더 나쁜 결과를 낳았다”고 대답했다. 벡 교수는 “이로 인해 국민이 정치와 제도에 회의를 품게 됐고 이것이 다시 정치와 제도의 정당성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국민이 사고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정치인은 과거의 잘못을 또 답습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요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제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벡 교수는 시민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탈바꿈의 동인이 자연적으로 생기지는 않는다”면서 “시민이 이 사태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사고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게 마련인데 그럴수록 국민이 분노하고 각성할 것”이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탈바꿈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벡 교수는 강연에서 2005년 미국을 강타한 ‘카트리나 재앙’을 예로 들며 “카트리나 참사 이후 기후 재난과 인종 불평등이 밀접하게 연결돼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면서 “이 충격적 경험이 ‘사회적 카타르시스’라는 성찰의 과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벡 교수의 강연을 따로 설명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표출된 시민의 두드러진 감정은 해방적 성향의 도덕적 분노”라며 “관료적 통제, 상명하달의 통치, 성장지상주의, 이념적 분열에서 벗어난 변화의 에너지가 넘쳐나지만 제도권 정치는 믿음직스러운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벡 교수의 이론은 ‘너무 좌절하지 말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심오한 변화를 주시하라’고 말하는 듯하다”며 “우리가 비관주의의 덫이 아닌 탈바꿈의 과정에 주목하며 해방의 희망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벡 교수는 1986년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가공할만한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하며 현대 사회의 위기화 경향을 비판하는 학설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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