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도 색깔이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의 융단폭격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켜켜이 쌓인 세월과 지리적 특성이 만들어내는 골목의 색깔은 세간의 우려처럼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태원의 유전자를 나눠 가진 경리단길에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태원과 차이점이 있다면 오리지널만을 추구하기 보다 국내 트렌드에 조금 더 민감하다는 것. 대표적인 음식이 초고칼로리 햄버거다. 최근 TV에서 줄기차게 조명하는 초고칼로리 음식 중 햄버거를 파는 가게는 대부분 경리단길 인근에 포진해 있다. ‘자코비 버거’의 내장파괴버거는 두툼한 패티 2개와 양상추, 토마토, 베이컨, 크로켓, 치즈, 양파를 거의 20㎝ 높이로 쌓은 초대형 버거다. 3, 4명이 달려들어야 다 먹을 수 있는 ‘밤스버거’의 3차대전버거와 햄버거의 재료를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식 ‘버거마인’도 경리단길의 명물이다.
서촌은 ‘서민의 동네’라는 정체성을 먹거리로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경복궁역 2번출구 앞의 금천교시장과 통인시장의 오래된 맛집들이 파는 족발, 보쌈, 뼈다귀해장국, 생선구이, 양념갈비, 파전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들이다. 터줏대감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보니 맥줏집 하나에서도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경리단길이 크래프트 맥주(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가게의 천국이라면 서촌은 어디서나 편하게 ‘소맥’ 제조가 가능한 한국식 맥줏집이 대세다. 몇 년 전 스타벅스를 필두로 대형 커피 체인이 하나 둘 들어서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아직은 관광지보다 사람 사는 동네의 색깔이 강하다.
반대로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고유의 색을 잃었다고 평가 받는 삼청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국수와 만두, 팥죽을 제대로 만드는 집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가배’의 팥죽, 화교가 운영하는 만둣집 ‘천진포자’의 고기만두, ‘황생가 칼국수’로 이름을 바꿨지만 여전히 북촌칼국수로 불리고 있는 이곳의 평양식 사골칼국수 등이 향수에 젖은 이들을 삼청동으로 끌어들인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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