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할 거니 초조해 말라" "만약 뽀록나면 넌 빠지는 거다"
팽씨와의 휴대폰 문자 추가 확보, 변호인 "부실 발표" 법정 공방 예고
검찰이 서울 강서구 재력가 송모(67)씨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김형식(44) 서울시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 의원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지만 살인지시를 직접적으로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최경규)는 살인교사 혐의로 김 의원을, 그의 사주를 받아 송씨를 살해한 혐의로 팽모(44)씨를 각각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피해자 송씨는 올해 3월3일 강서구 내발산동 자신의 건물에서 손도끼로 머리를 수 차례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김 의원이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의원이 송씨가 보유한 순봉빌딩 등 강서구 일대 땅을 상업용지로 변경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가 서울시의 반대로 용도변경이 무산되자 송씨가 “돈을 갚지 않으면 6ㆍ4지방선거 전에 뇌물 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팽씨를 시켜 송씨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의원이 송씨에게 5억2,000만원을 받았다고 써준 차용증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날 검찰은 김 의원의 휴대폰을 복원해 범행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 살인교사 혐의를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팽씨는 지난해 9월19일 김 의원에게 ‘오늘 안 되면 내일 할 거고, 내일 안 되면 모레 할 거고, 어떻게든 할거니 초조해하지 말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또 올해 3월8일 중국으로 도피해 있던 팽씨가 ‘만약 뽀록(들통) 나면 넌 빠지는 거다’는 문자 메시지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범행 전날 팽씨에게 5차례 전화를 걸었고, 3차례 문자를 보냈다. 범행 직후인 3월3일 오전 8시부터 사흘 후 팽씨가 중국으로 도주하지 전까지도 두 사람은 27차례 연락을 주고 받았다.
검찰은 팽씨가 서울 강서경찰서 유치장에서 김 의원에게 보낸 쪽지를 공개했다. 팽씨는 당시 김 의원에게 ‘네가 고인에게 얼마나 협박을 받아서 고통을 겪었는지 자세히 말하고 선처를 구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내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구류소에 있을 때 (네가 건넨) 첫 마디가 탈출과 자살이었다. 진짜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다 내려놓자’고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이는 앞서 김 의원이 팽씨에게 보낸 ‘미안하다’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쪽지에 대한 답장이며, 살인교사의 정황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의원의 범행이 치밀했다”고 말했다. 송씨의 일정과 시간대별 동선, 살해 후 도주경로 등을 상세히 일러주면서 10년 지기인 팽씨를 범행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송씨와 식사를 하면서 팽씨를 몰래 불러 송씨의 얼굴을 확인시켰고, 팽씨와는 대포폰, 공중전화로만 통화해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검찰은 “수 차례 범행을 미뤄오다 3월2일 김 의원에게 ‘이제 끝이다. 반드시 내일 송씨를 죽여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받고 송씨를 살해했다”는 팽씨의 증언이 구체적이면서 일관적인데다 추가 정황 증거를 확보해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정황 증거일 뿐 살인을 지시한 문자 메시지나 쪽지 등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검찰은 김 의원 측과 법정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의원의 변호를 맡은 정훈탁 변호사는 “검찰이 살인교사를 입증할 증거도 찾지 못한 채 부실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공소장과 수사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해 하나하나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송씨의 비밀장부인 ‘매일기록부’에 국회의원, 구청장, 세무서장 등 정ㆍ관계 인사들의 이름과 금품 제공내역이 적힌 것과 관련,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김관정)에 사건을 배당, 로비 의혹 수사에 나섰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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