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 전문가인 경찰에 안 넘기고 검사·수사관 110명 투입 변죽만
"경찰이 온전히 수색했다면 순천서 유병언 잡았을 것" 진단
검찰이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40일 동안 수사력을 낭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심각한 상처와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정권의 입김에 따라 검찰이 전공도 아닌 검거작전을 주도하면서 결국 국민적 조롱거리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23일 “검찰은 원래 수사를 하는 곳이지 검거는 경찰이 전문인데, 유씨 검거를 강조하는 대통령 발언이 나오니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검거를 경찰에 넘기지 않고 매달린 게 결국 조직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4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유씨 검거를 독촉했다. 그럴 때마다 검찰은 검거에 투입할 검사와 수사관 수를 늘렸다. 특히 대통령이 6월 10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자, 대검찰청은 당일 저녁 군 합동참모본부 장성까지 참여한 유관기관 회의를 열었고 인력을 추가 투입했다. 지금까지 검거에 투입한 검사와 수사관은 110명에 이른다. 주로 유씨 도피를 돕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신도들의 통화 및 움직임 등을 추적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등 떠밀린 검찰의 검거 성과가 좋을 리 없었다. 5월 24, 25일 순천에서 있었던 유병언 검거 작전도 검거ㆍ수색 노하우가 많은 경찰이 온전히 담당했더라면 성공했을지 모른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검찰이 (대통령에게) 말할 수는 없고 언론이 경찰에 검거작전을 넘길 수 있도록 기자들이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검찰이 이같이 변죽만 울리는 검거에 매달리는 동안 본연의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유씨 수사와 검거를 맡은 인천지검은 미제사건이 7,000건을 넘어 특별수사팀이 생기기 이전보다 2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팀에 검사와 수사관을 대거 파견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도 조직폭력ㆍ마약 관련 주요사건 수사를 대부분 뒤로 미뤄놓았다.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후신으로 전국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총괄해야 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이 도주한 피의자의 검거작전을 설명했다. 권력형비리 특수수사통인 최재경 인천지검장은 유씨를 검거할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청사에서 밤을 지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문책론도 불거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유병언 참사’로 불러 마땅하다”며 박 대통령의 사과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및 이성한 경찰청장 경질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시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찰의 잘못”이라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뇌부 문책을 시사했다. 이 청장은 22일 청와대에 들어가 경찰의 미흡한 초동 대처 등에 대해 질책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청장 교체 가능성도 조심스레 흘러 나오고 있다. 검찰 역시 김진태 검찰총장 등 수뇌부 책임론이 불거지자 외부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전날 유씨 시신의 초동 수사를 맡았던 우형호 전남 순천서장을 경질한 데 이어 이날 감찰 결과도 나오기 전에 정순도 전남경찰청장을 추가 직위해제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5월 전남 순천 별장 수색 당시 검찰이 유씨를 놓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경찰이 애꿎은 피해를 당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유씨 사체의 초동 수사를 부실하게 한 점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당시 검찰이 유씨를 신속히 검거했더라면 경찰력을 동원해 전국을 이 잡듯 뒤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책론에 대해 다른 목소리도 있다. 검거 작전의 주력 주체에 혼동을 준 것이 청와대여서 정확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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