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짜로 죽을 위기야.” “지금은 4월 16일. 지금 핸드폰 수평으로 들고 있지?”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여학생들이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동안, 저 빌어먹을 안내방송이 또 흘러나온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지금 잡을 수 있는 봉이나 물건을 잡으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아이들의 말. “미쳤나 봐. 이런 상황에서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그래 놓고 자기들끼리 나오고.” “그 지하철도 그랬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 달라고 그러고, 진짜 좀 있었는데 죽었잖아.”(24일 방송된 KBS1 파노라마 ‘열 여덟 살의 꿈’)
“찍어야 해 이거.” 90도까지 기운 배 안에서 소방 호스로 몸을 묶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외친다. “그런데 여기 사람 있는 거 모르면 어떡해.” “호루라기 불어봐.” “삑~.” (24일 jtbc 뉴스9 ‘겁먹은 아이들, 그들 눈으로 찍은 최후영상’)
끝까지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을 저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죽어갔을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무엇을 떠올렸을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부서지고 녹슨 희생 학생들의 휴대폰에서 복원한 저 참혹한 광경들을 보고도 여당 의원들은 “교통사고”(주호영)니 “수학여행을 가다가 개인회사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심재철)이라는 허튼소리를 무람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아직 풀어야 할 의혹들이 숱하게 쌓여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만으로도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된 나라, 기본을 갖춘 정부였다면 살릴 수 있었던 304명의 귀한 목숨을 어이없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국가범죄임이 명백하다.
그러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5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고의 최종 책임자’를 자처하며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터이다. 희생된 학생들, 끝까지 제자를 챙긴 교사들, 승객들 탈출을 돕다 숨진 의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굵은 눈물을 쏟던 모습을 국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참사 100일이 지나고, 담화가 나온 지도 68일이 흘렀다. 허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따지기도 민망한 나라 꼴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눈물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새누리당은 아직도 참사를 AI(조류독감) 따위에 빗대며 청와대가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할 것”이라던 다짐이 무색하게 ‘국가 혁신’을 이끌 변변한 총리 하나 못 찾고 부적격 장관 후보자들을 내세워 세월만 허송하게 한 책임, 명확한 진단도 공론도 없이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계획을 내질러 논란만 부른 책임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
유병언이 숨진 지 40일이 지나도록 까맣게 몰랐던 검찰의 ‘허깨비 꼬리잡기’ 놀음에도 청와대의 책임이 없지 않다. 애당초 검찰은 유씨 일가 비리 수사에 착수하며 ‘피해배상의 구상권 확보’가 1차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찬찬히 밝히기도 전에 유씨를 도망자 선장에 이은 또 다른 괴물로 몰아간 일부 여론과 대통령의 호된 질책에 중심을 잃었고, 범인 검거는 전문인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 안팎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 홀로 작전’을 고집하다 일을 그르쳤다.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은 엊그제 사표를 내며 “어느덧 젊은 검사의 꿈과 열정은 스러지고 상처뿐인 몸에 칼날마저 무뎌진 지금이 바로 떠날 때”라고 말했다. 이름깨나 날린 특수검사의 칼날을 무뎌지게 한 것은 그 자신을 포함해 ‘청와대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던 검찰 수뇌부의 오판이었다.
조선일보가 참사 100일을 맞아 만 33~63세 엄마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다시 일어날까’라고 물었더니 98명이 “지금 같은 나라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답했단다. 어디 엄마들뿐이랴. 대통령이 이 기사를 읽었을지, 읽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 뿌리깊은 불신과 불안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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