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부패 심해 사인 못 밝혀" 독극물 사망 가능성은 없는 걸로
손뼈 결손 등 "100% 유씨 맞다" 법의학자들 저체온 사망에 무게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원인 규명이 실패로 끝났다. 시신 수습 당시 경찰이 초동 대처를 소홀히 한 탓에 재수사에서도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저체온에 의한 자연사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관련기사 3면
유씨의 시신을 정밀 감식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독극물 분석과 질식사, 지병, 외력에 의한 사망 여부 등을 분석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과 시점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가장 큰 관심사인 타살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유씨 시신에서 추출한 간과 폐, 근육시료를 일반독물과 마약류, 케톤류 등으로 감정한 결과 양성반응이 없어 독극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은 배제됐다.
목이 졸리거나 가격당한 흔적 등은 시신 손상으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서 원장은 “질식사 및 지병 등에 의한 사망, 멍 등 외력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분석했으나 시신이 심하게 부패하고 내부장기가 소실돼 사인 규명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사인 감정에 참여한 이한영 중앙법의학센터장도 “너무 많은 조직이 손상돼 사인을 규명할 만한 실마리가 전혀 없었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사망 시점 역시 특정이 불가능했다. 다만 서 원장은 “사진상 사망 10~15일쯤 된 것 같다는데 그보다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해당 시신이 유씨가 맞다는 사실만은 의문의 여지 없이 재확인됐다. DNA 분석 외에도 ▦좌측 대퇴골 길이와 추정 신장 ▦왼쪽 둘째손가락 끝마디 뼈 결손 및 넷째손가락 변형 ▦금니 2개와 아래턱 치열 등이 유씨 정보와 일치했다. 시신 발견 장소에서 수거된 소주병과 스쿠알렌 증거물에서도 유씨의 DNA가 검출됐다. 이 센터장은 짧은 기간(17~18일)에 고도로 부패가 진행됐다는 의혹에 대해 “미국 테네시주에서 10일 만에 시신이 거의 백골화가 된 사례도 있다”며 유씨의 시신임을 거듭 강조했다.
타살을 뒷받침할 일부 원인이 배제되면서 법의학자들은 다양한 가능성 중 저체온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강신몽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이날 “현장 사진으로 봤을 때 (유씨가 숨진 곳은) 저체온사에 아주 합당한 현장”이라며 “날씨가 따뜻한 5, 6월에도 허기 상태이거나 비가 내려 체온이 떨어지면 저체온사로 사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호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해외 연구를 보면 저체온사 시신의 4분의 1이 옷을 일부 또는 전부 벗었다”며 양말을 벗은 채 발견된 유씨의 저체온사 가능성을 점쳤다.
국과수가 사인 규명에 실패함에 따라 공은 다시 경찰로 넘어가게 됐다. 유병언 변사사건 수사본부는 유씨의 행적을 밝히기 위해 수색 범위를 넓혀 유류품을 찾고 유씨 도피를 도운 수배자를 검거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지난달 유씨 사체를 발견한 직후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아 주변의 족적 등은 거의 훼손된 상태여서 사인 규명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유씨 사인 등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국과수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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