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예정지 '서초 15구역'
주민들 요구로 市 감사 들어갔지만 구청 "반대 30% 미만" 인가취소 안돼
찬성 의견도 45%에 그쳤는데...
아파트 추진서 완공까지 보통 10년
조합들이 시공사 감시해야 하지만 연임 가능한 임원들의 야합 일쑤
주택법은 단지에 공공시설 요구, 제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정부
잘못된 옛날 방식 언제까지 계속되나
흔히 재건축 재개발로 불리면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오밀조밀 들어선 동네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도시정비사업은 조합, 컨설팅업체, 시공사가 합작하여 반대의견은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조합은 형식적 책임은 가장 많이 지지만 실제로는 전문지식 없는 지역주민이기 일쑤이고 실질적인 사전정지 작업은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업체가 맡는다. 이런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파트 분양이 완료될 때까지 시공사가 직접, 혹은 금융대출로 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 삼각연대보다 더 어마어마한 주역이 실은 정부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인허가는 지방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조합_시공사_컨설팅업체가 아무리 어느 동네를 아파트 단지로 갈아 엎으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만 엄격하게 감시를 하면 지역주민이 억울하게 제 집을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동시에 지극히 이기적인 지역주민이 자기 집을 여러 개 지분으로 나눠 팔거나 그 쪼갠 지분으로 최근에 이사 와서 아파트 투기를 하는 걸 막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건축 재개발 등이 일어나는 지역을 보면 지방정부의 이런 감시 작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부채질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지방정부만 탓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이 서민 집 빼앗는 것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법규와 시행령이 그렇고 판례조차 그렇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수중학교와 이수초등학교 사이 2만4,800평 주택가는 ‘서초15구역’으로 불린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건설업체들이 눈독들일 자리이나 땅값 자체가 워낙 비싸서 요즘 같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수익이 나기도 힘들어 보이는 곳이다.
이 지역은 2011년 10월 주민들이 요청했다며 서울시(실제로는 서초구청)가 재건축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재건축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 적 없다는 주민들이 나서면서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면서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이 30%가 될 경우 지역해제를 할 수 있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245명의 서명을 받아 구역 해제동의서를 낸 결과 서울시가 2012년 12월부터 작년 6월까지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는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주민 45%는 찬성, 24.15%는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반대주민들의 요청으로 서울시가 작년 9월부터 주민감사에도 들어간 결과 서초구청이 주민 의견을 직접 묻지 않고 재건축을 원하는 이들만의 의견으로 예정구역 지정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재건축예정구역 인가는 취소되지 않았다. 서초구청은 실태조사 결과 반대 의견이 30%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찬성의견이 70%에 크게 못 미치는 45%라는 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서초구청은 올 2월25일에 전체 주민의 3분의 2가 서명하여 다시 재건축을 요청했다며 ‘주민제안’방식에 따른 재건축 예정지역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김희정(68)씨는 “남편도 아프고 이 나이에 어디로 가요. 나는 재건축에 목숨 걸고 반대하는 사람인데 처음에 재건축을 요청한 사람들 명단에 우리집이 세 ‘구찌’(세 필지의 주인)로 들어가 있었어요. 반대하는 주민들이 해제동의서를 받을 때 정보공개청구로 구청한테서 재건축을 요청한 주민명단을 받았더니 거기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이게 말이나 돼요?”라고 말했다. 반대운동을 하는 이들은 당시 재건축 요청자로 표시된 사람 중에 130명이 엉터리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현재 그들 중 일부 대표를 뽑아 재건축추진위원들을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고발까지 한 상태다. 임명순(65)씨는 “올해 재건축을 제안했다는 사람들 명단도 달라고 했더니 구청에서 개인비밀정보라며 주질 않아요. 그러면 그 명단도 가짜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했다.
설사 명단이 다 진짜라고 해도 주민 전체가 찬성하지 않았는데 재건축이 강행되는 것 자체에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재건축 재개발은 조합원 자격이나 정부 지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지역 주민의 3분2가 동의하면 구역지정이 된다. 법에는 불량주택의 비율이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노후주택을 판정하는 기준은 지방정부마다 매우 달라서 멀쩡한 구역도 지정이 된다. 앞서 말한 방배동 김희정씨네 집도 98년에 지은 집이다. 원래 재건축은 ‘노후불량 건축물이 50%이상인 지역으로 준공 후 15년 이상 경과한 다세대, 다가구 건축물이 30%이상인 지역’(서울시 도시주거환경 조례)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서초15구역은 서초구의 실태조사에서 노후불량 건축물이 57.78%, 15년 이상된 다세대(다가구) 건축물이 31.44%라는 판정을 받았다. 판정이 공정했느냐는 별개로 이 규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 불과 15년 된 건축물을 노후 불량주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들은 콘크리트의 수명이 100년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일단 구역이 지정되면 증개축을 못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면 떠나야 했다. 과거에는 아파트를 건설하면 큰 이익을 보기 때문에 그 이익에 매달리는 그악스런 소리에 3분의 1 미만인 반대자들이 쫓겨가야 했고 그걸 법규가 나몰라라 했다. 최근 들어 반대하는 이들이 그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 손해본다는 이유로 이웃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권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억지로 포기하게 하는 도시정비법의 근본적인 폭력성은 전혀 문제제기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파트 단지 건설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자 빠져 나오려고 해도 일단 구역으로 지정되어조합이 결성되면 빠져 나오는 것은 더욱 힘들다. 착공도 하기 전인데도 조합_시공사_컨설팅 업체가 쓴 돈(매몰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로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이는 지역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계획 단계부터 문제 소지를 안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임과 더불어 서울에서는 더 이상의 재건축 재개발이 허가 나지 않게 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미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우선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 조합과 시공사는 사업비를 계산해서 넣어야 하는데 이때 필수적인 것이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 땅이 확보되어야 아파트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는 감정평가업체는 지방정부(서울이라면 구청)가 제시하는 2개 업체 중에서 고르는 것이 관행이라 결국 지방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더구나 업체가 땅값을 평가하는 기준은 주택공시지가에 따른다. 주택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60~80%선이다. 이렇게 조합원의 재산을 적게 추산해서 사업비가 적게 추산되면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것은 시공사로서는 쉬워지지만 사실과 달리 계산한 땅값 때문에 일부 주민은 억울한 보상을 받기도 한다. 완공 즈음에 가면 비용계산이 어긋나 개인분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문제는 틀린 분담금조차 진작에 제시하고 사업시행 인가를 받는 조합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아파트가 완공만 되면 일반분양가보다 싸게 받는 조합원들이 올라가는 아파트값으로 이 모든 손해를 벌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결국 모든 부담은 조합원 차지가 된다. 추진에서 완공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단계에서 조합이 시공사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조금 나아질지 모르지만 보통은 조합의 인적 구성은 결성되면 완공까지 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다. 조합 임원은 임기를 2년으로 하고 연임하도록 되어 있는 정관이 악용되어서 계속 연임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 내에서 서로 다른 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자정작용을 하는 통로가 봉쇄되어 있다. 심지어 구역 지정 이전에 생겨난 추진위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2010년에 ‘합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추진위 때부터 조합으로 이어지는 단일 인력과 시공사가 야합하는 것을 막을 통로는 막혔다.
아파트 분양이 잘 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분양이 어려울 때는 실상 시공사도 어렵다. 근본적으로 재건축 재개발이라는 것이 아파트 단지 건설을 허용하는 대신 공공시설을 민간에 떠넘기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단독주택지의 용적률은 150%이다. 이게 재건축 재개발이 되면 220~300%의 용적률을 적용받게 된다. 그만큼 불어나는 면적을 팔아서 사업을 충당한다. 그 이득을 본다는 이유로 주택법은 아파트 단지 내에 온갖 공공시설을 갖추길 요구한다.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 주민운동시설 도서실 공원 녹지 등은 원래라면 정부가 공급해야 할 공공시설들이다. 동네마다 지방정부가 지어주어야 할 시설을 공동주택의 필수적인 시설로 법(주택건설기준등에 관한 규정)에 명시하고는 민간에 떠넘겼다. 이에 대한 부담은 시공사가 결국에는 조합(주민)에 안겨버리는 방식으로 끝난다. 입주자들 스스로 공공시설을 짓는 격이다. 아파트 단지화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책 <아파트 한국사회>를 쓴 건축가 박인석(명지대)교수는 “공공이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면서 전국에 아파트 단지는 계속 장려되고 그렇게 늘어난 아파트 단지들이 한국인의 의식구조까지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를 살리고 공공은 공공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주거지 개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미관을 위해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지역의 주거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부터 정부 역할 민간에 떠넘기기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언제까지 잘못된 옛날 방식을 계속할 것인가.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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