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기름 흡착포로 떠와 드로잉 만장처럼 걸어놓고 참혹한 죽음 고발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 경험 개인적 트라우마를 사회로 확장시켜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미술작가 한기창(48)은 8월에 할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러진 뼈가 보이는 엑스(X)선 필름을 사용해 삶과 죽음, 상처와 치유를 다룬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의료용 재료들로 신작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캔버스를 붕대로 감싸거나 피 묻은 외과 수술 도구들을 전시장에 진열하기도 했던 기존 작업과 이어지는 전시를 구상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 뒤 여덟 차례 팽목항을 찾았다. 어민의 배를 타고 나간 침몰 해역에는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흡착포를 바다에 던져 기름을 걷고 바닷물째 떠서 통에 담아 가져왔다. 기름 묻은 흡착포 천을 햇볕에 말리고 그 위에 바닷물을 빼고 경화제를 섞은 기름 찌꺼기로 드로잉을 했다. 거기에 세월호를 떠올릴 만한 단서는 전혀 없다. 화선지에 먹으로 드로잉한 추상 회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얼룩진 흡착포에 기름으로 드로잉한 시커먼 선은 직설적 표현보다 더 강렬하게 원통하고 참혹한 죽음을 증거한다.
경기 광주의 영은미술관에서 2일 시작한 그의 개인전 ‘징후’에서 세월호 기름의 흡착포 드로잉이 천정에 만장처럼 걸렸다. 길이 5, 6m의 흡착포 천 20여개가 걸린 공간이 비극적인 죽음을 고발하는 비통한 묘지처럼 느껴진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의 고통을 그는 누구보다 강하게 공감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고통과 절망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1993년 독일 유학을 앞두고 자동차 운전 중 정면 충돌해 상대방은 즉사했고 그는 만신창이가 됐다. 2년 간 병원에 있으면서 일곱 번 대수술을 받았고 석 달씩 두 차례 몸 전체를 깁스한 채 꼼짝 못하고 지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진통제로 버티며 죽지 못해 살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붓과 종이 대신 인체 엑스선 필름을 사용하게 된 것도 교통사고 이후다. 미술 작업은 그에게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가 됐다.
개인적 트라우마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으로 확장됐다. 기존 작업의 주제를 이었으되 세월호 사건이 들어오면서 치유보다는 고통이,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해졌다.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해 ‘참 안 됐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정치인들의 팽목항 방문처럼 이벤트성 작업을 하긴 싫었다. 그 동안 다뤄온 주제인 삶과 죽음, 고통과 치유의 맥락에서 세월호라는 거대 상처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세월호 사건은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참극이다. 거기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징후를 보았다. 그 징후와 인간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흡착포 기름 드로잉을 비롯해 조각과 회화, 설치, 영상,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만장을 닮은 드로잉 외에 또 다른 흡착포 드로잉에서는 고통스럽게 웅크린 채 뭉친 사람들 형상이 절규처럼 느껴진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들어간 투명 상자 위에 엑스선 필름을 콜라주해 식물 형상을 표현한 작품은 부러진 뼈를 찍은 사진이 생명체로 거듭나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둥지에 엑스선 필름을 붙여 만든 알 모양이 들어앉은 작품은 세월호 사건으로 피지도 못하고 숨진 안타까운 목숨들을 부화하지 못한 알로 은유하고 있다. 높이 3m, 길이 9m 벽면 가득 플라스틱 접착제인 글루스틱으로 작업한 드로잉도 볼 수 있다. 엉겨 붙은 기름띠처럼 길게 이어지는 검은 선이 고통과 파국의 이미지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작가는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시신 유실을 막는 데 쓰인 어망도 가져 왔으나, 전시 공간이 부족해 작품으로 선보이지는 못했다. 대신 이 그물로 제작하려던 설치작품의 스케치 드로잉을 선보였다. 실종자 수색에 쓴 조명탄 탄피도 구해서 전시하고 싶었으나 군이 관리하며 유출을 막는 물품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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