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별나다. 권위주의를 벗고 인간미를 입었다. 교회의 개혁을 꿈꾸기보다 몸소 실천한다. 이전 교황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 용기와 과감함을 보면 ‘이런 교황이 어디서 왔을까’ 싶다. 그 교황이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 1989년 한국을 찾은 이후 교황의 방한은 처음이다. 이번 방문은 한국의 순교자 124위 시복식(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하는 예식) 집전과 제 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이 주된 목적이지만, 사회 정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언행은 남북 분단,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가진 한국에 큰 울림을 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시작하는 연재, ‘별에서 온 교황’.
이런 교황은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인근 노숙자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교황의 뜻을 전해들은 노숙자 한 명이 난감해했다. 그는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교황을 만나는 동안 개를 맡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성당에는 개를 들일 수 없지만 교황은 노숙자뿐 아니라 개까지 기꺼이 초대해 미사를 보고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해 12월 17일 교황의 일흔일곱 번째 생일날 일어난 일이다.
김종봉 천주교 마산교구 신부는 이 일화를 강론 때마다 인용한다. 낮은 곳으로, 더욱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의 행보는 그에게도 “충격과 감동의 연속”이다. “이전 교황들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에요. 가난한 자를 위한 삶을 강조하고 사회 참여를 활발히 한 교황이 많지만 생일날 노숙자를 초대해 미사를 보고 식사를 함께 한 분은 없었거든요.”
2013년 3월 즉위 이후 바티칸에서 세계로 퍼져나가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인에게 깊은 감화를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종교의 벽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 받는 이유다. 사제들부터 나서 “일찍이 이런 교황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30대의 젊은 사제인 진슬기 신부(‘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저자)에게는 교황이 선출 직후 신도들 앞에 몸을 보였을 때부터가 파격이었다.
2013년 3월 13일 오후 8시15분 성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로 나온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차림이 단출했다. ‘교황의 상징’인 빨간 벨벳 망토(모제타)도, 빨간 구두도 걸치지 않았다. 흰색의 성직자 예복(카속)에 금제 가슴 십자가 대신 주교용 은제 십자가 만을 걸었다. 교황의 입에서 나온 축복의 메시지인 ‘우르비 엣 오르비(바티칸과 전세계에)’는 진 신부를 더욱 놀라게 했다. “좋은 저녁이다. 여러분의 환영에 감사한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회를 위해 헌신한 것에 감사한다”라고 한 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이 주교가 여러분을 축복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제게 강복해주시도록 여러분이 먼저 기도해 주십시오.” 군중을 향해 고개까지 숙였다. ‘교황’이 아니라 ‘로마의 주교’란 표현을 쓰며 자신을 낮췄다. 교황의 곁에 서있던 추기경들이 당황했다. 중계 영상으로 이를 지켜본 진 신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 신부는 “교황님이 허리가 아프신가, 아니면 발코니 아래를 보고 축복을 내리시는 건가 싶었다”며 “뭘 잘못 본 줄 알았다”고 했다. 진 신부는 또 “새 교황에 선출되면 신자들에게 축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 게 관례인데 교황은 고개까지 숙이며 기도를 부탁했다”며 “덕담을 들으러 온 손자에게 ‘내가 어른으로서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니’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파격으로, 역사상 그런 교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권위주의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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