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화장실보다 공간 넓어 노숙자들 문 걸어놓고 취침장소로 장시간 무단 점유
환기 잘 돼 흡연자들까지 '애용', 일반인 사용제한 규정 없어 난감
1급 지체장애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김용란(48)씨는 얼마 전 의정부의 수도권 지하철 1호선 가능역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하 전용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10분 넘게 인기척조차 없었다. 누군가 화장실을 이용한 뒤 닫힘 버튼을 누르고 나와 벌어진 일이었다. 전용 화장실은 안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다. 인근 직장 건물에 전용 화장실이 없어 이곳을 하루 서너 번 사용한다는 김씨는 5일 “하루 한 번 꼴로 문이 닫혀 역무원을 불러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전용 화장실 사용으로 장애인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하철 역사, 대형 건물 등에 마련된 전용 화장실은 휠체어를 타고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자동문이 있고 공간도 넓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이 옷을 갈아입거나 노숙자가 잠을 자는 등 ‘용도 외 무단점유’를 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원 원주역 전용 화장실은 종종 탈의실로 이용되고 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차례로 화장실에 들어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것. 1인당 5~10분씩 이용하기 일쑤다. 뇌병변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박홍구(39)씨는 “‘여기는 장애인용 화장실이니 다른 곳을 이용하라’고 했더니 ‘우리도 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대뜸 따지고 들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근육이 굳어가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한혁규(20)씨는 “좁은 일반 화장실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불편을 겪어 눈치가 보인다”며 “스스로 일어서서 소변기조차 이용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전용 화장실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흡연자도 장애인을 괴롭힌다. 전용 화장실은 혼자 넓은 장소를 차지할 수 있고, 환풍 장치도 대체로 잘 갖춰져 흡연실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인 한윤수(22)씨는 “전용 화장실을 다녀오면 담배 냄새가 몸에 밸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리가 불편해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이순애(58)씨는 “노숙인들이 잠을 자 밤새 문이 닫혀 있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그러나 일반인의 전용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은 아직 없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장애인 사용을 제한하는 장애인 편의시설은 장애인 주차장밖에 없다. 김소영(43)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장은 “노약자나 임산부의 사용은 권장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일반인들은 장애인을 위해 전용 화장실 사용을 피하는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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