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대로 했다면 세월호는 절대 뜰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빚은 해운업계 구조적 비리를 수사해온 검찰 관계자가 5월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 허위작성 경위를 밝히며 탄식하듯 뱉은 말이다.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이 6일 발표한 수사결과에는 ‘죽음의 항해’를 가능케 한 민관유착의 추악한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구속 18명을 비롯해 재판에 넘겨진 43명은 원칙과 규정을 철저히 무시하며 금품ㆍ향응 수수, 공금 횡령 등을 일삼았고, 참사가 터지자 문서를 위조하고 수사기밀을 흘리며 은폐를 시도했다.
유착의 정점에는 ‘해피아(해양수산부 마피아)’가 있었다.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해수부 고위관료 출신인 한국해운조합 이인수 전 이사장은 공금 2억6,000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했고, 사업본부장 등 간부들도 공금을 빼내 이사장에게 상납하거나 유흥비 등으로 썼다. 해수부 감사실 사무관은 안전장비 점검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KST) 직원에게 수시로 금품상납을 요구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사실을 KST측에 귀띔했다. 전ㆍ현직 해경도 불법을 눈감아주고 뒷돈을 챙겼다. 치안감 출신인 해운조합 안전본부장은 운항관리자들에게 선사들의 과적 등 불법행위를 묵인하도록 지시하며 “원칙대로만 하면 어떻게 하냐, 선주들이 월급 주는데 융통성 있게 하라”고 다그쳤다. 인천해경 해사안전과장은 장비 결함 선박의 운항정지를 명령한 부하 직원에게 철회를 종용했고, 해경청 정보수사국장은 해경의 압수수색 정보를 해운조합에 알렸다. 거미줄처럼 얽힌 검은 공생관계를 들여다 보면 연루자가 기소된 43명뿐일까 싶다. 뿌리까지 발본색원하는 지속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해운조합과 KST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더 큰 과제가 남아있다. 정치권과 해운업계 이익단체인 한국선주협회의 유착 의혹을 밝히는 것이다. 검찰은 선주협회가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시찰을 주선하고 입법 로비를 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며,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을 7일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박 의원은 5차례 해외시찰 외에도 하역업체 계열사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1억원을 받고 지방의원 공천 대가로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날 해운조합이 담당해온 운항관리감독을 맡을 독립기관 설립 등 법ㆍ제도 개선 방안 마련도 권고했다. 독립전문기관 설립을 위한 법 개정안은 2011년 발의됐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한국일보 5월 1일자 보도). 검찰은 입법이 무산되는 과정에 해운업계와 해수부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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