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3일 선출된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한 곳은 숙소로 가는 셔틀버스였다. 새 교황을 태우기 위해 준비된 전용 리무진을 마다한 것이다. 교황이 버스에 오르자 타고 있던 추기경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기사에게 교황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난 이들과 함께 탈게요.”
교황이 되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사제 시절에도 대중교통을 즐겨 탔다. “시간을 절약하려 지하철을 주로 탔지만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버스 타기를 더 좋아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교황이 된 첫날 밤도 관저인 사도궁이 아니라 교황청 내 성직자들의 공동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보냈다.
첫날만의 깜짝 행보가 아니었다. 다음날 기도하기 위해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으로 향할 때도 전용 차량을 물리쳤다. 대신 교황청 경찰 소속의 소박한 차를 탔다. 으레 꼬리를 무는 수행차량도 없었다. 성당에서 기도를 올린 교황은 콘클라베 전 묵었던 교황청 밖 성직자 숙소인 바오로6세로 향했다. 방으로 가 짐을 챙겨 나온 교황은 그간의 숙박비도 직접 계산했다. 숙소 직원들이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랐다.
자신을 가리켜 교황 대신 로마의 주교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교황은 여권도 교황만의 것을 버렸다. 바티칸 시국 원수의 의전 특권이 아닌 고국 아르헨티나의 일반 국민 여권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런 사실은 올 초 교황이 여권을 갱신하면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권과 신분증 갱신을 요청했다”며 “교황이 아르헨티나 국민 자격으로 외국여행 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여권 갱신 과정에서도 편의나 특권을 사양하고 일반인과 같은 절차를 밟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특권을 버린 교황의 행보는 즉위 1년 5개월이 지났어도 변함이 없다. 지금도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낸다. 순방 때는 전용 방탄차인 파파모빌을 타지 않고 작은 차를 이용한다. 교황청은 이번에도 “방탄차가 아닌 한국에서 생산된 작은 차를 준비해달라”고 한국 측에 요청했다. 숙소 역시 서울의 주한 교황청 대사관 내 대사가 평소 사용하던 방을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복장 역시 여전히 검소하다. 선출 직후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몸을 보였을 때도 교황의 상징인 빨간 벨벳 망토(모제타)나 빨간 구두,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흰색의 성직자 예복(카속)에 검정 구두, 은제 십자가를 착용한 그였다.
그런 그를 세상은 ‘베스트 드레서’라고 한다. 지난해 미국의 남성 패션잡지 에스콰이어는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빨간 구두를 거부하고 검은 구두와 함께 장식 없는 단순한 예복을 입어 자신의 진보적인 신앙을 표출했다”는 게 이유다.
특권을 마다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행보는 여타 종교인에게도 귀감이다. 대한성공회의 오인숙(카타리나) 수녀 사제는 “가톨릭 황제로서 특권을 버리고 소외 당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교황에게서 마치 예수를 보는 듯 하다”며 “그의 행보는 가톨릭 사제뿐 아니라 종교의 벽을 넘어 이웃 종교인과 일반인에게도 반성과 성찰의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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