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 수긍하면서도 "현실과는 괴리" 갸우뚱
전군 특별인권교육 첫 실시… 체계적 교육 없어 이벤트성 비판도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지만 군인에게는 인권이 있습니다.”
8일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육군 제30기계화 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 강당. 사단 법무참모인 김규화 대위가 전면에 파워포인트를 비추며 ‘인권’이라는 말을 꺼내자 참석한 260명 병사 중 일부는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었다. 입대 후 군인의 의무와 상명하복의 중요성은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어왔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강조하는 교육은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지시로 마련된 이번 특별인권교육은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을 계기로 전 장병들이 군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유사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ㆍ해ㆍ공 전군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전군 특별 인권교육은 군 창설이래 처음이다. 군 당국은 이등병에서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일과를 중단하고 교육과 토론에 참여토록 했다.
특히 이번 교육은 가혹행위와 욕설, 성추행 등 병영 내 인권 침해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 병사들이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김 대위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후임에게 빨래를 찾아오게 하거나 지휘관이 휴가를 제한하는 행위, 심지어 일과 후에 TV시청을 금지하는 행위도 모두 병사들의 기본권 침해”라며 “금연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에게 금연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흡연했다고 외출, 외박을 제한하는 행위도 모두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구타와 언어폭력과 성추행 등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 자료도 활용됐고, 피해자 인터뷰 등도 상영됐다.
여기엔 인권 문제에 둔감한 지휘관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도 담겼다. 김대위는 “모든 지휘권은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행사돼야 한다”며 지휘권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간부님들도 육군 규정에 따라 해달라. 사적 감정 배제를 제일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또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런 군대가 장병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전투력은 오히려 약해질 것”이라며 ‘인권 강조가 전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휘부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도 주력했다.
교육은 가혹행위가 발생할 경우 병사들의 신속한 대응을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 대위는 “문제가 생기면 즉시 지휘관을 찾아가라. 그래도 안되면 외부 인권기관에 전화하라”고 말했다. 이어진 중대 소대별 토론 모임에서도 김 대위는 “지휘보고 체계를 이용하고, 안되면 부모님에게 얘기해라. 부모님이 가만히 있겠냐”며 “이번 사건처럼 참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에 대해 병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행운 상병(22)은 “윤 일병 사건을 접하면서 고참병으로서 여러 생각을 해왔다”며 “누구나 갖는 기본적 권리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 지키는 것도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내 체계적인 인권 교육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교육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도 없지 않다. 현재 병사들은 인권 교육과 관련해 입대 후 4차례에 걸쳐 4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는 정도이며 인권 교육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군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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