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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

입력
2014.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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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기도 싫은 사건의 연속

중요한 건 남의 고통에 대한 관심

함께 노력해 ‘관심국민’ 줄여 가야

꽃 피는 봄 4월 초,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장기 구타와 모욕에 시달리던 병사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며칠 뒤 경남 김해에서는 강요된 성매매와 폭행에 심신이 망가진 여고생이 숨졌다. 그로부터 6일 뒤에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미증유의 참사! 아직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포천 빌라의 살인사건도 이 무렵에 발생한 게 아닌지.

이들 사건은 서로 관련이 없다.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어떤 책임도 없다. 전적으로 무죄다. 그런데도 죄책감 무력감이 들고 마음이 아리고 아프고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은 왜인가. 특히 짐승 같은 군대 내 폭력과, 여고생 살해범들의 잔혹하고 끔찍한 시신 훼손이나 범죄 은폐에 관한 기사는 읽기도,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윤 일병 사망사건 두 달 뒤에는 전역이 임박한 임 병장의 전방부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임 병장 사건이 세상에 먼저 알려졌을 뿐이다. ‘참고 견디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 가만있으면 세월호’라는 말이 번지고 있다. 고통을 참다 보면 윤 일병처럼 죽게 되고 참지 못해 분노를 터뜨리면 임 병장처럼 남들을 죽이게 된다. 잘못된 지시나 지침대로 가만있으면 스스로 목숨을 구할 길이 없어진다.

이 되돌아보기도 싫은 봄과 여름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뭘 했던가. 어느 한 구석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것 같다. 모두 나사가 빠지고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게 나라인가. 어이없고 기초도 기본도 무시된 유병언 수사, 반성도 개선도 없는 국회, 그리고 여전히 부정과 비리에 둔감한 사람들.

특히 군은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자기들끼리 그 난리를 치르고도 임 병장 사건을 예방하지 못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결국 가만있었을 뿐이다. 움직이거나 활동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도 가만있는 거지만,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도 가만있는 것이다.

윤 일병 사건은 군대 폭력의 메커니즘,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면서 폭력의 악습이 대물림되고 지속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주범으로 꼽히는 이 병장이라는 병사도 입대 초기에는 폭언과 무시에 시달린 피해자였고, 본인 희망에 의해 다른 부대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사회 전체에 번져 있고 폭력이 일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무관심은 폭력을 조장하고 폭력은 무관심을 키운다. 올해 2월 서울 송파의 세 모녀가 동반자살한 사건이나 부모로부터 방치된 채 쓰레기더미에서 살아온 인천 4남매가 4월에 알려진 사건도 본질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네 사건과 같다고 봐야 한다. 이웃과 동료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자연스러운 사회, 다른 사람이 겪는 피해나 불공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존중되고 표창 받는 사회라면 무관심과 폭력에 의해 빚어지는 사건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남의 일에 관심을 보이거나 간섭·간여하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자칫하면 피해를 겪고 심지어 목숨도 잃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평택에서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청년을 나무라던 60대 할머니가 벽돌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재작년 9월 수원에서는 담배 피우는 고교생들을 훈계하던 50대 가장이 다섯 살짜리 아이가 보는 앞에서 맞아 숨졌다.

그러니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책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관심과 배려, 공감의 중요성을 부단히 일깨우고 부추겨야 한다. 단시일에 달라질 수 없지만 각각의 생활단위와 조직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 ‘관심국민’을 줄여나가야 한다.

어디서든 우두머리나 상급자,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의 배려와 관심은 긍정적인 낙수효과를 낸다. 문제의 사후 처리와 재발 방지 측면에서도 이런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들 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더 실망스럽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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