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자살한 박모 일병, 두 차례 소원수리 냈다 고충
집단폭행 윤 일병은 엄두도 못 내… 내부 고발 시스템 있으나마나
2012년 3월 28일 새벽 강원 고성 22사단의 한 일반전초(GOP) 초소. 경계근무 중이던 박모(사망 당시 20세) 일병이 K2 소총 총부리를 자신의 입 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은 곧장 두개골을 관통했다. 박 일병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사건을 조사한 군은 그의 죽음을 두부관통상에 의한 총기자살로 결론짓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뒤늦게 밝혀진 자살의 원인은 처참했다. 박 일병은 2011년 8월 해당 부대에 전입한 직후부터 신병교육대 시절 소원수리를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대원들로부터 집단따돌림과 폭행,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배신자’ ‘고자질쟁이’라는 낙인이 뒤따랐다. 6개월 동안 동료의 근무를 대신 서고 괴롭힘을 당하던 박 일병은 다시 이런 사실을 고발했다. 같은 부대 동료병사가 탈영한 것을 계기로 상급부대장이 실시한 소원수리에서였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이번에도 또 소원수리 사실이 공개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박 일병의 내부고발 사실은 곧 부대원들에게 퍼졌다. 특히 내부 부조리 해결에 책임을 진 중대장 A씨는 “네가 쓴 소원수리 때문에 곤란해졌다. 내 등에 칼을 꽂았다”며 박 일병을 힐난했다. 간부를 포함한 부대원 21명은 더 가혹하게 그를 괴롭혔다. 박 일병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뿐이었다.
군대 내 구타나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사망, 자살, 탈영 등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군은 다양한 병영문화 개선 대책을 내놓았지만 가혹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병사가 부당행위 피해를 내부고발할 수 있도록 마련된 소원수리제도는 오히려 보복을 부를 뿐이다. 내부고발이라면 당연히 철저한 비밀 보장이 핵심이지만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제도가 전혀 실효성이 없는 이유다. 집단 구타 끝에 숨진 28사단 윤모(20) 일병 역시 ‘마음의 편지’를 넣을 수 있는 함을 곁에 두고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소원수리 용기를 낸 박 일병도, 소원수리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윤 일병에게도 피난처는 없었다.
소원수리제도에 대한 병사들의 불신은 깊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013년 발표한 ‘군 인권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병사 10명 중 7명(68.2%)이 비밀 유지가 보통 이하라고 믿었다. 소원수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해 봤자 개선이 안 되고(46.9%), 비밀 유지가 부실하거나(26.6%), 불이익이 우려된다(21.4%)는 것이었다. 강원도 전방에서 복무 중인 한 병사는 “소원수리를 하는 순간 누가 했는지 알려지고 곧바로 부대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데 누가 소원수리를 하겠느냐”며 “고통이 쌓이는데도 해결할 방안이 없으니 결국 자살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와 단절된 폐쇄적인 우리의 군대 문화는 이처럼 내부고발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한정된 공간에서 훈련시간 외에 내무반 생활까지 24시간을 함께 하는 조직에서 문제를 제기한 병사가 한번 배신자로 몰리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지휘관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가혹행위를 근본적으로 근절하려 하기보다 고발자를 문제시하거나 문책을 피하려 사건을 덮기 십상이다.
군 밖에서의 고발도 쉽지 않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해도 군 당국은 익명성 보장을 내세우며 군 자체적으로 처리토록 요구하고 있고, 군인복무규율은 군 복무 관련 고충을 군 외부 기관에 알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윤 일병 사건도 가족들이 나서서 군 수사기록 등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실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혔을 뻔했다.
군이 시민사회와 단절된 채 폐쇄적으로 ‘군대만의 법칙’을 강요하는 한 100가지 처방도 소용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군 관계자는 “군대처럼 조직 내에서만 모든 생활이 이뤄지는 폐쇄적 환경에서는 (고발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내부 고발을 반기지 않는다”며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군의 폐쇄성을 깨뜨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일병은 자필 유서에서 “군인이 자살한 뉴스를 보면 2년을 못 참고 왜 죽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누가 탈영, 자살 그런 일이 있어야 그제서 귀를 기울인다”고 적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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