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보장 안 돼 되레 불이익만, 외부에 해결 요청 금지 법령도 문제
가혹행위 등 군 내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한 병사들의 고발 구제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상태다.
군 당국은 부적응 병사들을 도울 목적으로 ‘마음의 편지’ ‘국방 헬프콜’ 같은 소원수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에는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등병과 선임 병사들을 섞어 편성한 ‘전우조’, 전입 신병이나 부적응 병사를 지휘관이 관리하는 ‘관심병사제’, 종교의 힘을 빌린 ‘비전캠프’ ‘그린캠프’ 등도 군내 부조리 척결을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에 기대야 할 병사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발표한 ‘군복무 부적응자 인권상황 및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208명의 응답자 중 부적응 집단에 속한 병사들의 75.8%가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음의 편지 등 소원수리제도에 대해서는 부적응 병사 69.3%가 부정적이었고, 전우조 편성은 67.8%, 관심병사제는 71.5%가 각각 ‘실효성이 없다’고 답했다.
가장 큰 요인은 신원 노출이다. 내부 고발자를 변절자로 몰아세워 문제 해결은커녕 불이익만 받기 십상이다. 2008년 선임 병사들의 폭행으로 의병 전역한 A(28)씨는 “마음의 편지를 쓰면 누가 썼는지 쉽게 파악이 돼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도는 등 군 생활을 버틸 수 없을 정도”라며 “당장 눈 앞의 문제는 처리될지 몰라도 남은 군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군의 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는 점도 소원수리를 유명무실한 제도로 만들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6년부터 정부 부처에 대한 민원을 일원화한 국민신문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각 군에 대한 민원도 통합했다. 하지만 군의 치부를 들춰내려던 계획은 곧 흐지부지됐다. 국방부가 “국민신문고는 실명으로 운영돼 가혹행위 등 익명성을 보장해야 하는 군 민원과 맞지 않다”고 주장해 결국 군 당국이 처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신문고에 접수를 해도 각 부대 감찰실은 누가 신고했는지 결국 다 파악하게 된다”며 “신고자를 보호하지 못해 통로가 있어도 이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복무 관련 고충사항은 법령이 정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외부에 해결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군인복무규율도 병사들의 고발을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이다. 군 관계자는 10일 “소원수리는 해당 지휘관이 아닌 별도의 조직에서 관리ㆍ감독하고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듯 신고자의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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