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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수리 했다고 왕따·폭행… 軍 시스템이 아들 죽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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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수리 했다고 왕따·폭행… 軍 시스템이 아들 죽인 것"

입력
2014.08.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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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수리 비밀보장 안 되고 부대 안에 곧바로 퍼져…

군 수사당국 애초부터 의지 없어 제3의 수사기관 도입해야"

“아들의 소원수리 사실이 공개돼 사망하기까지의 과정, 사망 후 군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나라 군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부대 내에서 집단괴롭힘을 당한 끝에 자살한 박모(사망 당시 20세) 일병의 아버지 박기동(55)씨에게 육군 28사단 윤모(20) 일병 구타 사망사건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윤 일병의 처참한 최후의 모습 위로 2012년 3월 육군 22사단에서 군 복무 중 사망한 아들 박 일병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차례 소원수리를 했다는 이유로 각종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끊은 아들에 대해 박씨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죽어간 윤 일병과 아프다고 말했다고 죽어야 했던 내 아들 모두 처연하고 안타까운 아들들”이라고 한탄했다. 더구나 사건 수사에 나선 군이 유서마저 분실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자살 원인을 우울증으로 돌렸던 것에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박씨는 “매년 군에서 목숨을 잃는 수십 명의 아들들은 개인의 문제 때문이 아닌 군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죽어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살 뒤에 도사린 가혹행위

박 일병의 어머니 신모(49)씨는 아들이 죽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부부는 연락을 받자마자 아들이 근무하는 강원 고성의 일반전초(GOP)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부대 대대장한테 아들이 ‘자살한 것 같다’는 연락을 오후 10시 30분쯤 받았어요. 곧바로 사고 현장에 갔는데 키 180㎝가 넘는 건장한 아이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던 신씨 눈에 들어 온 것은 전투복이었다. 신씨는 “전투복이 겨울용이 아닌 여름용이었다”며 “겨울 내내 하복을 입고 근무했다더라”고 말했다. 강원 지역은 보통 4월까지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진다. 특히 GOP가 위치한 강원 고성 최전방 지역의 기온은 더 낮다.

부대 측은 박 일병이 살이 쪄 옷이 맞지 않아 동복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제서야 부모는 아들이 휴가 나와 “부대 안의 여러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박 일병은 사망 직전까지 간부를 포함해 부대원 21명으로부터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왕따, 물리적 폭행, 욕설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가해졌다. 여럿이 모여 “개처럼 짖어보라”고 모욕을 줬고, 가슴과 배를 주물럭거리는 성적 희롱도 자행했다. 중대본부 소속이었던 박 일병은 초소 경계와 무관한 보직이었으나 인원 부족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외곽 근무에 차출됐다. 아버지 박씨는 “기록을 보니 다른 중대본부 근무자보다 최대 9배나 많이 근무를 섰다”고 말했다. 실탄을 자주 손에 쥔 박 일병이 자살하게끔 군이 방조한 셈이었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흉은 소원수리였다. 박 일병이 전입을 오자 신병교육대 시절 소원수리를 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부대에 퍼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들은 부대 지휘관들을 믿었다. 그게 패착이었다. 전입 후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두 번째로 소원수리를 냈으나 곧바로 발각돼 부대원의 더 큰 분노를 샀다. 신씨는 “사람이 아닌 제도가 아들을 죽였다”고 절규했다.

납득할 수 없는 군 수사

군 수사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사일지에 기록된 가혹행위 증거는 100가지도 넘었고, 박 일병의 부모는 당연히 가해자들에게 엄벌이 내려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자꾸 아들의 입대 전 생활이나 외부 요인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부모는 평소 메모 습관이 철저했던 아들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해 수차례 유서가 없느냐고 문의했다. 그 때마다 군은 “그런 건 없다”고 앵무새처럼 되뇔 뿐이었다. 그러다 동료 가해병사 한 명이 ‘대대장이 박 일병의 전투복 바지 건빵주머니에 들어있던 유서를 빼돌렸다’고 양심 고백하면서 비로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유서는 절절했다. 아들은 자신을 괴롭힌 부대원의 이름 한 명, 한 명을 빼곡히 열거했다. 박 일병은 “사람을 개무시한 놈들, 나를 TV에서 나오는 개처럼 다룬 것들. 솔직히 다 죽이고 싶었다”며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부대에서 죽이고 싶다 생각을 해 본 적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나 하나 죽으면 다 끝나니깐…. 행복하세요”라고 유서를 마무리했다. 부모는 “군 수사당국이 애초 수사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이보다 더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어머니 신씨는 “우리 아들 사례만 봐도 군 복무 중 사망하는 병사에 대한 수사는 절대 군 당국에 맡기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일병 부모는 제3의 수사기관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박 일병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보훈 대상자로 승인을 받았지만 순직자 인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부모는 “아들의 명예를 되찾지 않는 한 아들의 영혼이 군 봉안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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