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 군은 계륵이다. 목적이 흐릿하다. 기댈 곳도 있다. 쌈 좋아하는 적 덕에 덩치는 크다. 별만 어지럽다. 외려 병영은 더 어둡다. 나라가 지켜주지 않는 병사가 나라를 지키고 있다.
“누구는 인성교육이 안 된 탓이라 하고 누구는 학교폭력이 만연한 탓이라지만, 틀렸다. 군 내 가혹행위가 뿌리 뽑히지 않는 가장 큰 책임은 군 수뇌부에 있다. 김 실장이 사고 발생 초기 엽기적 가혹행위의 세세한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가 지금까지 논란이다. 하지만 이를 알았든 몰랐든,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국방부 차원의 사고종합대책본부를 꾸리도록 하고 있다. (…) 하지만 국방부 최고 수장은 훈령을 어기고, 사후 보고도 챙기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 군이 습관적으로 사고를 축소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그 밑바닥에는 ‘굼뜨고 뒤처지는 병사는 때려서라도 군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수뇌부의 인식이 깔려있을 것이다. (…) 구타와 괴롭힘을 ‘사람 만들려다 좀 과해서 불거진 사고’ 정도로 여기는 지휘관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훈련시간뿐만 아니라 일상과 내면까지 부하를 지배하려는 간부는 얼마나 많을까. (…) 군대 안 간 여자가 뭘 아느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군인들이 생각하는 군인정신이란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어디까지 국가 수호라는 고귀한 명분에 복무하는 훈련이며 어디부터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행위인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폭력은 짧은 순간 사병들을 일사불란하게 만들겠지만 그 일사불란함으로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 회의해야 한다. 군은 결코 헌법 위에 있지 않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인간성의 가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 우리 군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목숨 바쳐 어떤 나라를 지키려는가(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희원 사회부장) ☞ 전문 보기
“이스라엘도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 우리와 이스라엘의 차이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의 군대에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 군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전쟁은 절대 나지 않을 것이고, 설사 나더라도 미군만 있으면 괜찮다는 믿음이 은연중에 모두의 마음속에 깔려 있다. 군의 중추인 장군들의 몸속부터 국방 의존증의 피가 흐르고 있다. 미군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제일 먼저 무너질 사람들이 이 장군들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위기의식과 절박감이 없는 군에 기강을 세운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저 후임병이 유사시 내 생명을 지켜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떤 선임병도 가혹 행위를 할 수 없다. (…) 기강과 전우애가 빠진 내무반은 사적인 폭력이 난무할 수 있는 조건이 다 갖춰진 은폐 공간일 뿐이다. (…) 총소리 났다고 그대로 도망친 GOP 소대장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나라 지키는 일이 제 일인지 남의 일인지 애매해진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윤 일병 사건의 근본 원인(8월 7일자 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양상훈 논설주간) ☞ 전문 보기
모병제도 선택지 중 하나다. 하지만 병사를 가려 받으면 사회의 관심에서 군대가 멀어진다. 대부분 국민에게 전쟁은 남의 일이 된다. 면제 원칙을 세우고 사회와 군을 잇는 게 먼저다.
“헌법은 나라의 최고 규범이다. 국방은 한 나라의 지상 과제다. 군(軍)의 구성과 운영에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원리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가는 많은 나라에 공통된 과제다. 그 핵심 주제의 하나가 징병제냐 아니면 모병제냐이다. (…) 시대가 변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모병제가 선진국의 추세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후에도 미국 군대는 세계 최강이다. 일상의 자율도 최대한 존중된다. (…) 그런데 우리는 왜 말조차 끄집어내지 못하는가? (…) ‘피로 지킨 나라’ ‘신성한 국방의무’ ‘북한의 위협’ 등의 장엄한 구호에 체포돼 시대의 변화와 세상의 흐름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 12명의 사상자를 낸 22사단 전방 초소의 총기 사건에 이어 두 ‘관심 사병’의 자살, 28사단 ‘윤 일병’ 살해 사건….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병영의 가혹 행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군인의 일상이 국민 생활수준보다 너무 낮으면 안 된다. 한 방에서 혈기왕성한 청년 수십 명이 출입의 자유가 제한된 집단생활을 하면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모병제는 군대를 양질의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 모병제는 장점도 많을 것이다. 첫째,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 둘째, 전문화를 통한 정예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셋째, 군 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든다. 넷째, 병역과 관련된 각종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예산 문제다. 과연 얼마만큼 예산이 소요되는지, 그 예산을 다른 예산과 조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젠 募兵制(모병제)를 논의할 때다(조선일보 ‘朝鮮칼럼’ㆍ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전문 보기
“지난달 28일 인천아시안게임 야구팀 엔트리가 발표됐다. 구단별 병역미필자를 고루 배분해 시빗거리를 없앤 명단이었다. ‘축구는 의리, 야구는 배려’라는 어느 네티즌의 댓글은 적확했다. “류중일 감독은 최고의 합법적 병역브로커”라는 냉소를 부정할 수 없었다. (…) 토너먼트에 오른 한국 선수에게 외국 기자가 “지면 군대에 끌려가나”라고 진지하게 묻는 건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사고는 그 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 명예를 걸고 싸우고, 그로 인해 팀 전체가 자부심을 느끼며,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절실하게 뛰는, 그런 톱 클래스 팀(국가)은 우리에겐 요원한 일이 돼 버렸다. 징병제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군대도 병들게 했다. 거꾸로 걸려 있는 국방부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는 건 우리 군대에선 결코 죄악이 아니다. 직업인으로서 소명의식이 없는 군대엔 월급 10만원짜리 병사들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 (…) 징병제는 사회 곳곳의 활력을 갉아먹었고, 쌓이고 쌓인 폐단은 화학적 결합을 통해 괴물 ‘이 병장’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더 강한 군대를 위해, 징병제의 적폐를 걷어내기 위해 우리는 느슨하고 비전문적인 다수를 버리고 단단하고 전문적인 소수로 가야 한다. 제한적 예산을 수십만 명의 병사에게 나눠주는 게 과연 슬기로운 일인가. 군(軍)이라는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그 직업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며 미래를 구상하는, 그야말로 직업인으로 군이 채워져야 한다.”
-징병제, 이의 있습니다!(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ㆍ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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