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불확실한 미래 반영하듯 가장 큰 지출은 적금 등 저축
현재의 자기 만족도 포기 안해 여행 비용에 과감한 씀씀이
내는 돈 비해 혜택 못 느끼는 "보험료가 가장 아까워"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오시자마자 떠나시는 님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계속해야 하나 그만 둬야 하나 고민하면서 견뎌낸 결과물인데 말입니다. 들어 오자마자 카드 값, 공과금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월급에 대한 이야기인 건 눈치채셨겠죠?
월급이 빠듯한 건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으로 살아가는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들의 월급은 도대체 어디로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인지, 2030 직장인 20명(남녀 각 10명)의 통장 상황을 점검해봤습니다.
불안한 미래...가장 큰 지출은 저축
최근 3개월 간 가장 큰 지출 항목을 꼽으라는 질문에 의외로(?) ‘저축’을 꼽은 이들이 많았다. 20명 가운데 7명이나 됐다. 결혼자금, 집 마련 비용 등 훗날에 들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다른 항목에서 허리띠를 졸라 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금융 관련 기관 종사자인 박모(29)씨의 경우 3개월 간 총 1,230여만원의 지출 가운데 절반 가까이(600만원)를 저축에 쏟아 붓고 있다.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올 1월부터 매달 200만원씩 은행에 적금을 넣고 있는 중이다. 박씨는 “아무래도 결혼을 하려면 7,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장 큰 부분을 할애해 저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모아도 장가갈 때 5,000만원 이상은 대출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모(25ㆍ여)씨는 “집 장만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현재를 담보해야만 가능한 미래가 있으니까 지출이 그쪽으로 맞춰가는 것 같다”며 “많지 않은 월급(200여만원)가운데 절반 이상인 120만원을 매달 적금과 펀드에 넣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2030세대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른 세대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 세대는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 없이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불안정한데다 집 마련 비용 등이 높다 보니 빠듯한 상황 속에서도 저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도 “불황을 겪는 가운데 직장에 얼마나 있을 지도 불확실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은 여행
‘여행경비’가 최근 3개월 간 지출 가운데 가장 컸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20명 가운데 6명이나 됐다. 이들은 자기 보상 차원에서 다녀오는 여행에 비교적 과감한 투자를 하는 성향을 보였다.
대기업 연구원인 주진혁(31)씨는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 차원에서 지난 6월 영국, 프랑스 등으로 300만원을 들여 혼자 9박 11일 여행을 다녀왔다”며 “또래 중에 여행이나 체험 등을 통한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패션기업에 다니고 있는 권순만(27)씨도 “최근 스페인으로 8박 9일 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월급보다 많은 비용(300만원)이 들었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저축을 많이 하면서 동시에 여행경비로 큰 돈을 쓰는 건 어찌 보면 모순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이들 세대의 특징이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자신들만의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갖고자 하는 게 이들 세대의 특징”이라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소비에 아낌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미래가 불안해 저축을 하면서도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데 주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쇼핑(3명), 월세 등 집 관련 비용(3명), 부모님 선물(1명)이 뒤를 이었다.
쓰긴 하지만 아까운 보험료
지출 항목 가운데 가장 아까운 부분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는 보험료가 1위를 차지했다. 20명 가운데 5명이 공통적으로 꼽은 항목이다. 꾸준히 나가는 지출이지만 눈 앞에 보이는 혜택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9급 공무원인 김모(27ㆍ여)씨는 “3년 전 부모님의 권유로 의료관련보험에 가입해 매달 7만5,000원씩 내고 있지만 병원을 잘 가지 않을뿐더러 보험료가 시간이 지날 수록 인상되니 내는 돈에 비해 혜택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기모(28)씨는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이야기가 나와 불안하다. 내는 보험료가 14만원으로 적지 않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여행은 당장의 쾌락이 있고, 저축은 쌓여가는 게 있지만 보험은 바로 혜택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젊은 층들이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실 당장의 '리스크'가 적은 젊은 세대에게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료가 아까운 건 자연스런 심리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월세, 통신비 등이 아까운 지출 항목으로 꼽혔다.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고모(27)씨는 “집이 지방이어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하는 원룸에 살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50만원을 아끼는 셈이니까 괜한 돈이 나가는 느낌”이라며 “방값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말했고, 5급 공무원인 조모(25ㆍ여)씨는 “기본요금제가 비싸다 보니 한 달에 통신비가 9만원이나 나간다. 쓰는 것에 비해 많은 비용이 나가는 것 같아 아깝다”고 답했다.
한 달도 못돼 고갈되는 월급
통장에서 저축, 여행, 월세 등 각종 비용이 빠져나가다 보니 한 달 월급을 ‘한 달 동안’쓰는 이들은 몇 안 됐다. 20명 가운데 12명이 받은 월급으로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10명 중 7명, 여성은 10명 중 5명이 다음 달 월급이 나오기 전에 월급을 다 써버린다고 답했다.
엔지니어인 김모(29)씨는 “월급여가 230만원인데 전세자금 대출원리금(48만원), 보험료(35만원), 카드값(70~80만원), 통신 및 공과금(10만원), 교회 헌금(25만원) 등이 고정적으로 빠져나간다”며 “월급이 들어와도 10일 후면 잔고가 없다”고 말했다.
개인병원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황모(23ㆍ여)씨도 “월급여(170만원)에서 결혼비용 마련을 위한 적금(110만원)과 신용카드 값이 나가고 나면 3~4일이면 월급이 통장에서 다 빠져나간다”며 “2년 전부터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한 달치 월급이 빠져나가는 기간이 일주일정도 앞당겨 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부모세대들이 몇 안 되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못했던 좋은 것을 해주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2030세대들은 비싸고 좋은 것에 익숙해져 있다”며 “길들여진 소비패턴 바꾸거나 생활 수준을 낮추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소득 수준에 맞지 않게 소비하는 부분이 있다”고 분석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권재희기자 luden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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