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진짜 시진핑 주석 봤어? 대박이네… 언제 중국 국가주석을 봐!”
7월 6일 오후 8시 29분 대학 후배에게 온 메시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어 공부하러 유학 간 이 친구에게 시진핑 주석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4일 오전 서울대 글로벌공학센터에서 있었던 시 주석의 강연을 취재했고, 이를 다룬 5일자 기사에 이름이 나갔었다. 친한 형이 기자가 됐다니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 검색하던 중 이 기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연락을 준 것이다.
시 주석과 그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가까이서 본 건 이제 겨우 견습기자인 내게도 신기한 일이었다. 세계 양대 강국이라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 아닌가. 명성대로 오직 시 주석 부부를 보기 위해 서울 전역에서 모인 중국 유학생 80여명이 강연 장소 밖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오전 10시 15분쯤 펑리위안 여사가 강연장에 등장할 땐 “펑리위안!”을, 12분 뒤 시진핑 주석이 들어설 땐 “시다다(習大大ㆍ시삼촌)!”를 자신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또한 시 주석이 입장하고 나선 중국 국가를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부르는데, “전진(前進)! 전진! 전진! 진(進)!”이라는 마지막 부분에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가사 그대로 거침없이 전진하는 중국의 위풍당당함을 온몸으로 체험한 기분이었다. ‘내가 취재라는 걸 하고 있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물론 이를 정반대 경우에서 느끼기도 한다.
5월 23일 0시 45분쯤 서울 구로구 가리봉파출소에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조선족 이신황(가명ㆍ43ㆍ일용직)씨가 들어섰다. 만취한 상태인 그는 “여기서 사는 게 힘들다. 빨리 가서 자고 또 오전 5시에 나가봐야 한다”며 “한 달 30일 중 28일을 일한다. 열심히 돈 벌겠다고 들어왔는데 차별이 심하다. 서럽다”는 말들을 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소란에 경찰들은 질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억울함에 가득 찬 이씨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왠지 그를 알아보고 싶었다. 신나게 떠드는 그에게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말을 건넸다. 한국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그는 처음엔 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렸다. 계속 했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10분쯤 뒤 나의 노력에 지친 건지 경찰을 향하던 그의 말이 내게 오기 시작했다. 형ㆍ동생이 됐다. 번호를 교환하고 저녁 약속을 잡았다.
6월 1일 오후 7시 가리봉동 한 중국음식점에서 신황이형을 다시 만났다. 형은 가리봉동 인근에 있는 요즘 찾기도 힘든 보증금 100만원ㆍ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살았다. 파출소에선 호기롭게 고성을 지르던 그였으나 이날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며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중국에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왔다. 그러나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이젠 중국에 가도 아무도 없다. 난 외동인데 2010년 아버지가, 199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국에도 친구가 없다.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서 집에 있기도 싫다. 23일에도 일용직 일을 끝내고 집에 있다가 높은 온도와 습도에 지쳐 맥주나 한 잔 하러 나온 거였다. 그러다 많이 마시게 됐고 본의 아니게 술집에서 소란도 피우게 됐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는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다. 1달에 2~3일만 쉬며 일용직 노동을 한다니 굳이 직접 해보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았다. 신황이형은 헤어지며 “동생과 만나서 기쁘다. 외로웠는데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지겹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같이 먹자”며 웃었다. 1주일에 3번 꼴로 꾸준히 연락하던 이씨는 7월 말 공항에서의 마지막 전화를 끝으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취재로 바쁜 나머지 “조금 이따 전화할게요”라고 한 말이 내가 신황이형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30분 뒤 전화했을 때 휴대폰은 이미 꺼져 있었다.
기자를 가리켜 ‘대통령부터 노숙자까지 만나는 직업’이라고 한다. 사회 최상위부터 최하위층까지 경험한다는 의미다. 견습기자인 나는 이를 중국 국가주석과 조선족 일용직 노동자를 만나며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쉼 없이 발로 뛰어야 뭐든 알 수 있다. 여기에 견습기자는 잠까지 부족하다. 오전 2시에 경찰서 기자실로 ‘퇴근’해 2~3시간만 자고 나와 새벽부터 다시 경찰서를 돌아야 하는 생활은 솔직히 지친다. 머릿속 일부는 항상 좀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 있다. 이 기획 이름 그대로 ‘개고생’이다.
그러나 투입 없는 결과물은 없다. 이 고생이 언젠가 정기자가 되면 빛을 발할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사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사실 견습기자만 이럴까. 오늘도 고뇌에 싸여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여기엔 지휘 고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중국 윈난성에 지진이 발생해 6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사고 수습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빌어 본다. 시진핑 주석과 이신황씨, 그리고 나 모두에게 건투를! [견습 수첩]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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