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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생? 견습기자만 하는 건 아니더라

입력
2014.08.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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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진짜 시진핑 주석 봤어? 대박이네… 언제 중국 국가주석을 봐!”

7월 6일 오후 8시 29분 대학 후배에게 온 메시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어 공부하러 유학 간 이 친구에게 시진핑 주석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4일 오전 서울대 글로벌공학센터에서 있었던 시 주석의 강연을 취재했고, 이를 다룬 5일자 기사에 이름이 나갔었다. 친한 형이 기자가 됐다니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 검색하던 중 이 기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연락을 준 것이다.

시 주석과 그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가까이서 본 건 이제 겨우 견습기자인 내게도 신기한 일이었다. 세계 양대 강국이라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 아닌가. 명성대로 오직 시 주석 부부를 보기 위해 서울 전역에서 모인 중국 유학생 80여명이 강연 장소 밖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오전 10시 15분쯤 펑리위안 여사가 강연장에 등장할 땐 “펑리위안!”을, 12분 뒤 시진핑 주석이 들어설 땐 “시다다(習大大ㆍ시삼촌)!”를 자신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또한 시 주석이 입장하고 나선 중국 국가를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부르는데, “전진(前進)! 전진! 전진! 진(進)!”이라는 마지막 부분에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가사 그대로 거침없이 전진하는 중국의 위풍당당함을 온몸으로 체험한 기분이었다. ‘내가 취재라는 걸 하고 있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물론 이를 정반대 경우에서 느끼기도 한다.

지난달 4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특별강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중국인 유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4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특별강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중국인 유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5월 23일 0시 45분쯤 서울 구로구 가리봉파출소에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조선족 이신황(가명ㆍ43ㆍ일용직)씨가 들어섰다. 만취한 상태인 그는 “여기서 사는 게 힘들다. 빨리 가서 자고 또 오전 5시에 나가봐야 한다”며 “한 달 30일 중 28일을 일한다. 열심히 돈 벌겠다고 들어왔는데 차별이 심하다. 서럽다”는 말들을 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소란에 경찰들은 질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억울함에 가득 찬 이씨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왠지 그를 알아보고 싶었다. 신나게 떠드는 그에게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말을 건넸다. 한국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그는 처음엔 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렸다. 계속 했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10분쯤 뒤 나의 노력에 지친 건지 경찰을 향하던 그의 말이 내게 오기 시작했다. 형ㆍ동생이 됐다. 번호를 교환하고 저녁 약속을 잡았다.

6월 1일 오후 7시 가리봉동 한 중국음식점에서 신황이형을 다시 만났다. 형은 가리봉동 인근에 있는 요즘 찾기도 힘든 보증금 100만원ㆍ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살았다. 파출소에선 호기롭게 고성을 지르던 그였으나 이날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며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중국에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왔다. 그러나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이젠 중국에 가도 아무도 없다. 난 외동인데 2010년 아버지가, 199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국에도 친구가 없다.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서 집에 있기도 싫다. 23일에도 일용직 일을 끝내고 집에 있다가 높은 온도와 습도에 지쳐 맥주나 한 잔 하러 나온 거였다. 그러다 많이 마시게 됐고 본의 아니게 술집에서 소란도 피우게 됐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는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다. 1달에 2~3일만 쉬며 일용직 노동을 한다니 굳이 직접 해보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았다. 신황이형은 헤어지며 “동생과 만나서 기쁘다. 외로웠는데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지겹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같이 먹자”며 웃었다. 1주일에 3번 꼴로 꾸준히 연락하던 이씨는 7월 말 공항에서의 마지막 전화를 끝으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취재로 바쁜 나머지 “조금 이따 전화할게요”라고 한 말이 내가 신황이형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30분 뒤 전화했을 때 휴대폰은 이미 꺼져 있었다.

기자를 가리켜 ‘대통령부터 노숙자까지 만나는 직업’이라고 한다. 사회 최상위부터 최하위층까지 경험한다는 의미다. 견습기자인 나는 이를 중국 국가주석과 조선족 일용직 노동자를 만나며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쉼 없이 발로 뛰어야 뭐든 알 수 있다. 여기에 견습기자는 잠까지 부족하다. 오전 2시에 경찰서 기자실로 ‘퇴근’해 2~3시간만 자고 나와 새벽부터 다시 경찰서를 돌아야 하는 생활은 솔직히 지친다. 머릿속 일부는 항상 좀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 있다. 이 기획 이름 그대로 ‘개고생’이다.

잠이 부족하니 어디서든 짬이 날 때마다 쉬려 노력한다. 6월 26일 오후 취재 중 서울 관악구 한 공원 미끄럼틀에 잠시 머리를 베고 누웠다. 들고 있는 커피도 이럴 땐 별 도움이 안 된다.
잠이 부족하니 어디서든 짬이 날 때마다 쉬려 노력한다. 6월 26일 오후 취재 중 서울 관악구 한 공원 미끄럼틀에 잠시 머리를 베고 누웠다. 들고 있는 커피도 이럴 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투입 없는 결과물은 없다. 이 고생이 언젠가 정기자가 되면 빛을 발할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사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사실 견습기자만 이럴까. 오늘도 고뇌에 싸여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여기엔 지휘 고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중국 윈난성에 지진이 발생해 6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사고 수습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빌어 본다. 시진핑 주석과 이신황씨, 그리고 나 모두에게 건투를! [견습 수첩]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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