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서 손 꼭 쥐어 주며 위로… 유족들 감격·슬픔 뒤섞여 눈시울
새터민·이주노동자 등 32명 참석, 조촐한 환영행사로 마무리
악수를 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갑자기 왼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얼굴에서는 잠시 미소가 가셨다. 14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이들과 인사하던 중 통역을 맡은 예수회의 정제천 신부에게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라는 설명을 듣고서다. 교황은 오른 손으로는 유가족의 손을 잡고 왼 손은 가슴에 올린 뒤 말했다.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안산 단원고 교사였던 고 남윤철씨의 아버지 남수현(가브리엘)ㆍ어머니 송경옥(모니카)씨, 사제가 꿈이었던 단원고 학생 고 박성호군의 아버지 박윤오(임마누엘)씨, 일반인 희생자 고 정원재씨의 부인 김봉희(마리아)씨다.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악수하는 내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있었다. 마음 깊이 당신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교황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4월 17일에도 교황청을 통해 슬픔과 위로의 뜻을 전했었다. 이틀 뒤엔 공식 트위터 계정(@Pontifex)에 글을 올려 “한국의 여객선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기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 한국 땅을 밟는 공항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다.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는 “교황과 (한국 신자들의) 첫만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끝에 우리 사회에서 큰 아픔 겪고 있는 세월호 가족 신자를 초청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가족들은 감격과 슬픔이 뒤섞여 벅찬 속내를 드러냈다. 남편을 잃은 김봉희씨는 “가슴 아픈 영광”이라며 “좋은 일로 교황님을 만났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단원고 교사였던 아들을 잃은 남수현씨는 “잘못한 사람들이 고해성사하듯이 뉘우쳤으면 좋겠다”며 “교황님의 말씀이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공항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외에도 필리핀 이주노동자, 새터민, 범죄피해자가족모임 ‘해밀’, 교황이 미사 집전 때 입을 장백의 제작에 참여한 장애인, 외국인 선교사, 시복되는 순교자의 후손, 청소년 신자 등 32명이 자리했다. 허 신부는 “평소 교황은 소탈하게 모든 이들과 소통하길 원해왔기 때문에 평범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교회 안에서도 귀감이 되는 분들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교황과 악수한 새터민 김정현(가명)씨는 “25년 만에 오는 교황을 만나다니, 살면서 이런 기회가 올지 몰랐다”며 “종교가 인정되지 않는 북한과, 남북한 평화 통일을 위해 교황이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성심여중에 다니는 강시원양도 “친구들이 부럽다고 난리”라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35분께 전세기 알리탈리아의 문이 열리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교황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영접 나온 염수정 추기경,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과 주교단, 평신자 등과 인사를 하면서 특유의 다정한 미소가 살아났다. 주위를 늘 편안하게 하는 유머도 그대로였다. 자신을 태우러 온 검은색 쏘울에 오르기 전이었다. 교황은 갑자기 시선을 자동차 건너편으로 돌리더니 손을 흔들었다. 취재하러 나온 언론을 항해서였다. 차에 오르고 나서도 차창을 내려 박 대통령에게 손을 흔들었다. 박 대통령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교황을 태운 차는 오전 10시 45분께 공항을 출발해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향했다.
공항 영접에서 시끌벅적한 환영행사는 없었다. 천주교 재단 사립학교인 서울 계성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녀 화동의 꽃다발 전달, 국빈 방문 때 이뤄지는 예포 21발 발사로 예우를 표시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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