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풍자 걸개그림 파문 확산
재단 "내달 토론회 후 전시 여부 결정"
특별전 참가한 국내ㆍ외 작가 13명, "세월오월 안 걸면 철수" 최후 통첩
콜비츠 판화 빌려 준 日 미술관도 동참
20주년 특별전이 결국 최대 악재로
대통령을 풍자해서 논란이 된 홍성담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 유보로 특별전 파행을 겪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9월에 토론회를 거쳐 전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특별전 참여 작가들 상당수는 16일까지 이 그림을 걸지 않으면 출품작을 철수하겠다고 밝혀 사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이미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했고, 일부 작가들이 전시 유보에 항의해 출품작을 철거한 마당에 일이 더 커지는 형국이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특별전이 오히려 광주비엔날레의 위기가 되어버렸다.
13일 긴급기자회견에서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로 제기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9월 16일 대토론회를 열고, 그 뒤에도 큐레이터들이 전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면 재단이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이 작품에 대한 미학적 평가, 특별전 추진 과정과 전시 유보, 예술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두루 다룰 예정이며, 날짜를 한 달 뒤로 잡은 것은 졸속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재단의 이 같은 결정은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여론 수렴이라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부담스런 판단의 무게를 줄이려는 듯하다. 그러나 수습책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세월오월’의 전시 유보에 항의해 작품을 철거한 3명의 작가 중 홍성민 작가는 “전시할지 말지 토론회 후 결정하겠다는 것은 검열이나 마찬가지”라며 “앞으로도 심기를 건드리거나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 있으면 매번 토론회를 하겠다는 거냐”고 반발했다.
국내외 작가 37명(하정웅 컬렉션 제외)이 참여한 이번 특별전의 한국 작가 17명 중 ‘세월오월’을 걸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고 밝힌 작가는 11명이다. 이들이 13일 밤 발표한 최후통첩성 탄원서에는 오키나와 작가 2명, 나치 저항 작가 케테 콜비츠의 판화 41점을 특별전에 빌려준 오키나와의 사키마미술관 관장도 서명했다. 케테 콜비츠 작품은 이번 특별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시에 빠질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지금,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까. 미술평론가인 유진상 계원대 교수는 “작가와 작품 선정은 큐레이터의 책임이고,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라며 “걸개그림을 전시해 관객들이 판단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는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뒤로 밀려나고 정치적 판단이 개입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번 논란은 특별전 개막 이틀 전인 6일 광주시가 ‘세월오월’에 대해 전시 불허를 밝히면서 불거졌다. 알려진 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너무 정치적인 그림이라 국비 지원으로 치르는 행사에 어울리지 않고 광주정신의 승화라는 특별전 주제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를 두고 예술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이라는 비판이 일자 광주시는 전시 여부는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떠넘겼다. 국비 지원과 시 보조금으로 행사를 치르는 재단으로서는 입장이 난처해졌고 결국 개막 당일 전시 유보를 발표했다.
광주시의 치고 빠지는 행보와 광주비엔날레 재단의 어정쩡한 결정에 걸개그림 파동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오직 이 그림만, 그것도 그림의 전체 내용 중 극히 일부인 대통령 풍자 요소만 부각되면서 특별전은 찬밥이 됐다. 논란의 와중에 광주비엔날레는 20년 간 쌓아온 명예에 상처를 입었다. 광주정신의 승화, 예술적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하려던 특별전의 취지는 빛이 바랬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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