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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정체성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끝없는 논쟁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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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정체성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끝없는 논쟁의 희생양

입력
2014.08.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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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라핀토 지음ㆍ이은선 옮김

알마 발행ㆍ372쪽ㆍ1만5,800원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란 중 가장 첨예한 것은 성 정체성의 선천성 여부다. 성소수자를 비정상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들은 성 정체성이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이들의 정체성을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반대파들은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으며 어떤 훈육이나 훈련, 심지어 신체적 특징과 부딪힌다 해도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 중 데이비드 라이머의 이야기가 있다. 남자로 태어나 열네 살까지 여자로 살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간 라이머의 삶은, 나와 타인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볼지의 문제를 넘어서 과학이 인간을 배척할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브렌다로 살던 시절의 라이머(오른쪽ㆍ옆은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 알마 제공
브렌다로 살던 시절의 라이머(오른쪽ㆍ옆은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 알마 제공
강요된 여성성을 거부하고 남성의 삶을 되찾은 뒤 이름을 데이비드로 바꾼 열여덟 살 때의 라이머. 알마 제공
강요된 여성성을 거부하고 남성의 삶을 되찾은 뒤 이름을 데이비드로 바꾼 열여덟 살 때의 라이머. 알마 제공

1965년 캐나다의 한 도시에서 태어난 브루스 라이머는 생후 8개월에 성기가 새까맣게 타는 의료사고를 당한다. 절망에 빠진 부모는 당시 존스홉킨스대의 저명한 성 심리학자 존 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들에게 성전환 수술을 시키기로 결심한다. 머니 박사는 성을 후천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학자 중에서도 매우 급진적인 부류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브렌다로 이름을 바꾼 라이머에게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실험을 감행한다. 그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성관계 놀이’로, 그는 어릴 때부터 놀이 삼아 성관계를 흉내내야 성 정체성이 바로 잡힌다는 믿음을 갖고 미성년자인 브렌다에게 성교하는 모습을 흉내내도록 지시한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브렌다가 14세에 자살을 시도하자 보다 못한 부모는 그에게 ‘성별의 비밀’을 알려주고, 브렌다는 12년 간 강제된 성을 버리고 원래의 성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머니 박사는 브렌다의 ‘성공 사례’를 가지고 학계의 거물로 발돋움한 뒤였다.

학계가 은폐하고 있던 진실이 드러난 것은 거의 20년 후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 존 콜라핀토는 1998년 ‘롤링 스톤’에 익명으로 라이머 사건을 폭로, 의학계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했다. 그 기사로 전미잡지편집자협회상 보도 부문을 수상한 그는 라이머의 동의를 얻어 실명으로 책을 출간했다. 책이 발행된 2000년만 해도 살아있던 라이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4년 자살했다. 12개월에 걸쳐 100시간이 넘게 라이머를 인터뷰했던 저자는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경험담은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본모습을 지켜야 하고 억압하고 조롱하고 억누르고 뒤흔드는 세상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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