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7시20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으로 14개의 흰색 천막이 일제히 불을 밝혔다. 이날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식 미사에 협조하기 위해 1개동만 남기고 철거됐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천막 농성장이 다시 설치된 것이다.
불과 5시간 전 시복식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수십만명의 인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갔지만, 150여명(주최 측 추산)의 참석자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을 손목에 걸고 지난달 14일부터 계속된 일일 문화제를 이어갔다.
이날 집회에는 ‘4ㆍ16 농성단 해단식’이란 부제가 붙었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권영국 변호사는 “교황 방한에 맞춰 농성단의 단식을 중단하고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 한상철 부위원장은 “많은 분들의 우려와 비판이 있으나 우리는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민과 함께 특별법을 만들어 아이들이 왜 죽었고, 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반드시 밝히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위로를 계기로 “다시 힘을 내자”고 다짐했다. 단원고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향해 직접 손을 내미는 장면을 보니 가슴 뭉클하고 눈물이 흘렀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이제라도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전 시복식에서 직접 교황의 위로 기도를 들은 단원고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영오씨는 단식 농성단에게 라틴어로 쓰인 참사 추모 수건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시복식에 참가한 뒤 귀가하지 않고 유가족과 함께 한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전남 광양에서 올라 온 이옥련(70ㆍ여)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국가도 하지 못한 위로를 해주셨다”며 “세월호의 진실이 종교의 벽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1시간여 동안 이어진 행사 말미에 촛불 대신 노란색 리본을 들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제대로 된 특별법을 쟁취하자”고 외쳤다. 하지만 여야는 임시국회 폐회(19일)를 앞둔 이날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편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을 거쳐 16일 입국한 고려인 자동차 대장정팀 70여명은 17일 경기 안산시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희생자 정부합동 분향소’를 찾아 분향했다. 이들은 18일 오후 광화문 농성장도 방문할 예정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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